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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사|수도권 기능 맡는 고위층 "분신"|지방 행정을 국가 차원서 수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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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흔히 경기도 도지사를 「지방 장관중의 장관」이라고 일컫는다.
이는 경기도의 도세나 지역적 여건, 정치적 영향력이 서울특별시를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 중 가장 「으뜸」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36개 시·군의 올해 예산은 6조원으로 경남의 3조7천억원과 비교할 때 갑절이 많다.
경기도지사의 직급은 차관급. 그러나 기능과 역할, 업무의 중요성, 난이도로 보아 장관급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래서 웬만한 장관 자리보다 경기도지사가 낫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선조 경기 관찰사도 종 이품 참판 서열에 두었다.
이때도 경기 관찰사는 다른 도 관찰사와는 달리 임금이 직접 낙점하는 경우가 많았다한다. 그만큼 비중을 크게 두었기 때문이다.
왕의 행차 시에는 거의 경기 관찰사가 선두에 나서 왕을 호위, 안내했다.
조선 22대 정조 대왕이 그의 생부 사도 세자 (장조)가 묻힌 경기도 화성군 화산에 융릉 참배를 위한 능행차 때면 경기 관찰사가 앞장서 행렬을 지휘했다.
경기도지사는 도단위 지역 행정 책임자이지만 수도권이란 지역 특성상 지방 행정을 국가 행정 차원에서 수행해야한다.
경기 지역 대부분이 서울과 관련, 수도권 정비 계획법·국토 이용 계획 등에 묶여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고도의 광범위한 판단을 내려야할 때도 있다.
또 경기도지사는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라 대통령의 통치 차원의 분신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야 하므로 때로는 단순 논리와 행정적·법률적 논리만으로 도정을 수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때문에 경기도지사는 해방 이후 줄곧 최고통치권자의 낙점으로 기용되곤 했으며 권력의 부침에 따라 운명을 같이해 왔다.
48년 정부 수립 후 경기도지사를 지낸 사람은 초대 구자옥씨 (6·25때 납북)를 비롯, 24명.
이 가운데 경기도 출신 지사는 3대 김영기 (작고·안성), 8대 신광균 (작고·개풍), 13대 김태경 (평택·변호사), 20대 이해구 (안성·국회의원), 22대 임사빈 (양주·국회의원 당선자), 23대 이재창 (파주)씨, 그리고 현 24대 심재홍 지사 등 7명뿐이고 나머지는 서울 (6명)·경남북 (5명)·강원 (3명)·전남 (1명)·충남 (1명)·평남 (1명) 출신들이다.
15대 조병규씨는 4년9개월간 최장수 했으며 11대 박태원씨 (4년2개월), 초대 구자옥씨 (4년) 등도 4년 이상 자리를 지켰다. 장면 민주당 정권 때 취임한 7대 윤원선씨는 취임 2개월만에 민선 지사 출마를 위해 사퇴, 최단명을 기록.
이밖에 최문경 (6대)·신광균 (8대)씨가 각각 5개월, 교통부장관을 지낸 손수익씨 (14대)가 6개월, 이흥배씨 (10대)가 7개월, 건설부장관을 지낸 김주남씨 (17대)가 8개월, 내무부장관·국회의원을 지낸 김태호씨 (19대)가 11개월25일 등 1년 미만 재임자만도 7명에 이르고 있다. 23대까지 46년2개월 동안 평균 재임기간은 1년9개월인 셈.
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과의 원만한 관계유지는 역대 경기도지사가 골치를 앓아온 행정 수행상 가장 어려운 문제중의 하나였다.
공화당 말기 지역 정치인들의 입김은 대단했다.
도지사의 시·군 초도 순시 또는 연두 순시 때 시장·군수 업무 보고장에는 으레 도지사의자와 똑같은 크기의 국회의원용 의자가 준비됐다.
다소 준비가 소홀하거나 의자 크기가 다를 때는 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지사가 업무보고를 받고 나면 으레 국회의원이 나서 도로·건설공사 등 자신의 선거공약사항을 순시 선물로 요구, 공무원과 유지들 앞에서 확답을 받아 내기도 했다.
국회의원 비서들이 뻔질나게 도지사실을 출입하면서 인사·인허가 청탁 등을 하는 것도 예사.
3공·5공 시절과 차이가 있으나 최근에도 하루 보통 2∼3건의 청탁이 밀려 이의 처리에 진통을 겪고있다.
6공들어 도지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국정감사. 23대 지사로 부임한 이재창 지사는 지난 91년9월 국회 국정 감사 때 내무·건설·상공·농림수산위 등 4개 위원회 의원 57명이 4일간 골프장·호화 별장 건설관련 자료 등 도정 전반에 대한 2백80건의 자료를 요청하고 소나기질문공세를 펴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이 지사는 지난14대 총선 때 고향 파주에 출마하라는 고위층의 요구를 받았으나 정치가 생리에 맞지 않고 선거기반과 자금 등이 취약하다는 이유를 들어 끝내 고사했다는 소문.
게다가 도내 총선 결과 총31석 가운데『25석 확보, 최악의 경우 20석』이란 목표에서 크게 벗어나 18석에 그쳤고, 그동안의 공화계 민자당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과의 불편한 관계 등이 빌미가 되어 재임 1년10개월 만인 지난달 21일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내무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처 22대 지사로 취임한 임사빈 지사는 도내 출신으로는 최장수인 2년6개월 동안 재임했다.
임 지사는 5공 말기 무더기 골프장 사업 승인과 관련, 비난의 여론이 들끓자 이에 대한 문책으로 옷을 벗어야하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말단 행정직으로 출발, 지사 자리에까지 올랐던 임 지사는 이임사에서 『보통 공무원은 백리길을 가는데 밤을 새우면서 걸어가지만 서울대 법대·고시 출신은 단 몇 시간이면 간다』고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각별한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치안본부장 출신의 18대 염보현 지사 (강원 금화)는 정치권에 너무 밀착했다가 정치의 희생양이 된 지사로 평가되고있다.
염씨는 경기도지사에 이어 서울시장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6공 초기 우장산 근린공원 공사수의 계약 특혜 사건과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는 파란을 겪어야했다.
염씨는 도지사 재직 시절 전대통령의 장인인 이규동씨 소유 오산시 양산동 평화농장 (25만평)을 통과하는 총 연장 4·7km의 도로건설을 위해 도비 8억6천만원을 변태지출하고 한 그루에 1천2백원씩 하는 잣나무 묘목 20만 그루를 무상공급 해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서울대 법대·행정고시를 거처 33세의 최연소 서울시 내무국장을 지낸 21대 김용래 지사 (충남 아산)는 머리가 명석하고 말솜씨가 좋아 「탤런트지사·행정배우」란 별명이 불기도.
김 지사는 결재 또는 보고를 받을 때 미심쩍은 사항이 있으면 슬그머니 화장실 옆방에 마련된 간이 도서실에 들어가 법조문과 규정을 확인한 후 결재할 정도로 치밀했다.
김 지사는 87년12월 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경기도에서 자그마치 41·5%의 지지를 얻어내 노태우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 재임 2년만에 서울시장으로 영전, 총무처장관까지 지냈다. 김 지사는 노 대통령이 경기도 연두 순시 때 『고향에 온 것처럼 훈훈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한다. 내무부장관 시절 낚시터에서 고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아부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이익흥씨 (평남 성천)도 경기도지사 (4대) 출신.
재임 기간 (2년6개월) 중 강화 전등사를 비롯, 각종 문화재 복구에 업적을 쌓았다.
박창원 지사 (9대)는 5·16혁명과 동시에 육군 준장의 군복을 입고 도지사로 취임했다가 2년7개월만에 현역에 복귀했다.
12대 남봉진 지사는 수원 팔달산에 난파 노래비를 세우고 난파 합창단을 창단하는 등 문화 예술 진흥에 큰 업적을 남겼다.
평택 출신인 13대 김태경 지사는 서울대 법대 재학시 사법·행정고시 양과에 합격한 수재. 취임 후 5무 운동 (술·도박·미신·노는 사람·노는 땅 없는 마을)을 제창,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미신 없는 마을』을 제창한 김 지사는 당시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강요로 용주사 주변 무당들의 단체가 주관하는 단합 대회에 나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축사를 해야하는 아이러니를 연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경기도 연두 순시 석상에서 『남한산성의 도벌을 막을 수 없겠느냐』는 물음에 『중과부적』이라고 대답, 당시 수행한 김현옥 내무부장관으로부터 「무엄하다」는 지적을 받아 큰 곤욕을 치른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서울대 법대 재학시 행정고시에 패스한 손수익 지사는 컴퓨터란 별명이 불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으나 개성이 너무 뚜렷한데다 추진력이 지나치게 강한 탓에 6개월 재임의 단명 지사가 됐다. <김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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