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이념이나 삶의 자세 강요 없어|입담 좋은「세태소설」대중적 가능성 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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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독 문학자 홍경호 교수가 보여주고 있는 작가로의 화려한 변신이 이채롭다.
지난해에 등단 작으로 발표한「녹색 꿈을 찾아서」에 이어 최근에 잇따라 발표하고있는 중편소설 「독신자의 전국」(『현대소설』봄호)과「나를 찾아 떠나는 여로」(『문학사상』4월호)는 모두 작가의 포부와 잘 어울리는 것들이다.
홍경호씨의 작품들은 우선 우리 소설이 지난 70년대 이후 깊이 빠져들었던 이념성의 세계를 건너뛰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테마들은 신인 작가들의 등단에서부터 발목을 죄어왔고, 소설의 성패를 주제의 해석에 따라 좌우하기도 했던 것이다. 홍경호씨는 소설적 출발에서부터 주제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있다. 그는 객관적 접근법에 의해 신랄하게 묘사되는 인정 세태를 이야기 거리의 중심으로 내세우면서, 경험적 자아가 추구하는 윤리적 가치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소설적 묘사의 신랄함 그 자체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되고있는 것이다. 홍경호씨의 소설「독신자의 천국」이나「나를 찾아 떠나는 여로」는 새태 소설의 대중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가의 주관적 가치의식에 좌우되던 소설의 관심을 현실의 무대위로 끌어올려 놓고있는 점이라든지 세대의 변화와 삶의 모습을 입담 좋게 서술하고 있는 점등이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는 새로운 이상적 인간상을 제시하고자 하지도 않으며, 이념이나 가치를 중요하게 내세우지도 않는다.
소설의 내용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왜곡된 가치관이나, 진지성을 잃고 있는 삶의 자세 등에 대해서도 결코 흥분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그러한 세태가 빚어지고 있는 삶의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파고들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홍경호씨의 소실이 보여주고 있는 세태소설의 가능성은 천박한 통속문화의 유혹에서 독자 대중을 다시 소설의 영역으로 끌어 올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된다.
물론 이것은 주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흥미에 연관된다. 흥미의 초점은 인정과 세태와 풍속의 변화에 있다. 때로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때로는 과장된 몸짓으로 우리네 인간들의 모습이 우스개처럼 그려진다.
무게의 소설에 익숙한 우리 소설 독자에게 재미의 소설을 내세우는 홍경호씨의 도전이 어떤 의미로 평가될 수 있을지 단안을 내리기 어렵다. 그의 내뱉는 듯한 어투와 거칠게 느껴지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문장이 빠른 속도로 전환하는 이야기와 함께 독자를 붙잡아 놓을 수 있다면, 독 문학자에서 소설가로의 홍경호씨의 변신은 일단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권영민><문학평론가·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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