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시청률을 높이려면…(유승삼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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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랑이 뭐길래』가 여전히 인기있는 것은 작가가 잘쓰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총선을 전후해 반짝했던 국민의 정치에 대한 열기가 다시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재미로 따지자면 정치만큼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또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지금은 정권교체기다. 드라마로 치면 바야흐로 클라이맥스다. 그런데도 정치의 시청률은 뚝떨어져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정치가 도무지 상식에 맞지않고 그러면서도 복잡하기 짝이 없어 실상을 종잡을 수 없는데 있다.
○식어버린 총선열기
경선을 한다했으면 열명이라도 좋을 것이다. 자신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고 지지자를 모으면 그뿐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들은 다 그렇게들 하고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판은 어찌된 셈인지 그렇게 상식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국민은 생각지도 않고있는데 스스로 나서 불출마 선언을 하지 않나,뒤늦게 경쟁판에 뛰어들더니 싱겁게 물러나 버리지 않나,오래 공들여 큰 세를 모으더니 하루아침에 포기하지 않나,도무지 상식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해프닝의 연속이다.
더구나 분명히 여기저기서 연기가 나고 냄새는 풍기는데 어느 하나도 그 정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게 또 우리의 정치판이다. 한쪽에선 외압이 있다하고,다른 한쪽에선 없었다고 주장한다면 분명히 어느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공작정치를 하는 셈인데 끝내 주장만 오갈뿐,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열심히 귀동냥 하고 점쳐보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날마다 그꼴이면 신물이 절로 고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국민은 TV드라마나 싸고돌 수 밖에 다른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는 분명히 정치에 대한 강요된 염증이요,무관심이다. 지난 총선에서 보여준 것처럼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높고 그 수준 또한 대단하다. 드라마나 보고있지만 정치는 공기와 같아 피하려 한다고 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잘 알고있다. 그래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자당의 경선만 하더라도 두후보의 간판슬로건인 「문민정치」나 「세대교체」론도 그 구체적인 알맹이를 검증해 보고싶어 한다.
○문제제기 대답없어
김영삼후보의 「문민정치」론에 대해 이종찬후보는 그러면 6공이 문민정부인가,군사정부인가부터 답변하라고 요구한바 있다. 만약 6공이 문민정부라 한다면 새삼 그것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군사정부에 지나지 않는다면 3당합당으로 군사정부에 참여해온 김 대표로서는 그런 주장을 할 자격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편 이 후보의 「세대교체」론에 대해 김 후보측은 이 후보가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내세우고 있는데 육사 출신에 정보부·민정당 창당주체 등 그의 경력에 비춰 그 스스로가 세대교체의 대상이 되어야지 주창자로 나서는 것은 적반하장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볼때는 두 지적 모두 그에 대한 답변이 기다려지는,따끔하도록 핵심적인 물음들이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물음은 물음으로 끝나고 더 이상의 논란은 전개되지 않고 있다.
지난 24일자 중앙일보에서 펼친 김·이 진영을 대표한 남재희·오유방 의원간의 설전도 마찬가지다. 이 후보의 세대교체론이 「역사의 새치기」가 아니냐는 지적이나,김 후보가 「무사고의 인물」이 아니냐는 지적이나 다같이 일면적인 설득력이 있어 논쟁의 전개를 더 기대하고 싶은 대목이다. 그런데 논쟁의 발전은 커녕 두 의원은 모두 당으로부터 경고만 받고 말았다고 한다.
이렇게 국민의 눈과 귀를 인위적으로 막아버리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상식을 벗어난 정치다. 비록 국민이 정당의 후보를 직접 선출할 수 있는 길은 제도적으로 막혀있으나 국민이 후보자들의 정견과 정책을 알 권리는 여전히 있다. 설사 정견과 정책의 대결과정에서 얼마간의 인신공격과 비방이 섞인다한들 그것이 국민의 눈과 귀를 차단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미 국민들은 두호부의 됨됨이를 알만큼 알고있을뿐 아니라 그런 인신공격이나 비방쯤은 가려 들을 수 있을만큼 수준도 높다. 또 지금 나올 수 있는 공격이라면 어차피 본선과정에서 나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정작 국민을 이렇듯 무판단의 상태로 만들어 놓고도 서둘러 줄서기에 나서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과연 무엇을 얼마나 알고있고 무슨기준으로 줄서기를 했는지 묻고싶다.
○숨김없는 토론 기대
두 후보는 이제부터라도 햇빛 쏟아지는 여론의 광장으로 나오라. 하다못해 교통난 문제라도 좋다. 구체적인 문제를 놓고 숨김없는 토론을 벌여 자신의 정치적 면모를 국민 앞에 제시하라. 「문민정치」나 「세대교체」같은 허울좋은 추상명사의 뒤에 숨어있는한 아무리 그것이 그럴듯해도 결국은 국민을 속이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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