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업주 구속사태/무리한 기업공개서 비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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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분식결산·외부인 부실감사등 요인/회사채 지급보증 기피 자금난 악화
잘못된 일의 사회적 귀결은 「구속」이지만 그 경제적 귀결은 「부실」이다. 구속은 자기만 당하면 그만이지만 부실은 자기 혼자 책임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한번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두고두고 경제의 각 분야를 뒤틀리게 하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만든다.
90년 9월부터의 상장사 부도사태는 결국 23일 검찰이 부도 상장사와 관련된 기업주·공인회계사 12명을 구속하는 데까지 이르렀지만 그 경제적 귀결은 아직도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보증보험사가 심각한 부실에 빠지고 이들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중소기업의 회사채 발행에 대한 지급보증을 기피,자금난을 가중시키고 심지어 회사채 유통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기현상까지 빚고 있는 것이 바로 88∼89년의 무리한 기업공개 드라이브에서부터 연유된 경제적 귀결이다. 그 귀결의 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증시호황의 바람을 탄 당시의 기업 공개드라이브는 불행히도 이번 검찰의 수사에서 나타났듯이 회사의 분식결산과 외부감사인의 부실감사를 동반한 것이었다.
그 1차적인 결과는 1년쯤 뒤부터 상장사의 부도사태로 나타났다. 90년 9월 대도상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무려 23개사가 부도를 내거나 법정관리신세를 졌다.
그 결과가 시차를 두고 증시침체의 한 요인이 됐고 다시 금융기관의 부실로 나타났다.
표에서 보듯 이들 실물분야에서의 부실은 회사채 지급보증을 섰던 각 금융기관의 대지급금으로 넘겨졌고 그 규모는 자그마치 3천7백78억원에 이른다.
한꺼번에 물어줘야하는 돈은 아니지만 이중 2백억원은 이미 물어줬고 나머지 3천5백78억원도 만기가 닥치면 언젠가는 에누리 없이 물어줘야 한다.
특히 보증보험회사의 부실이 심각해 한국보증의 경우 덮어쓴 대지급금이 6백81억원으로 자본금(3백억원)과 잉여금(2백54억원,91년 3월말 현재)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다시 세번째 귀결로 이번에는 보증보험은 물론 금융기관들이 중소기업의 회사채 지급보증을 기피하기 시작,급기야 이번달에는 그 여파가 심각해졌다.
이달중 9천5백7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키로 물량을 조정해 놓았지만 지난주까지 발행된 것은 이의 43%인 4천87억원어치에 불과하고 그나마 이중 70%는 단순히 만기도래분을 갚기 위한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이달중 만기가 닥치는 6천3백35억원의 회사채 차환분도 다 발행하지 못할 판이다.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들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에 대해 미리 차환 발행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 놓거나 상환기간을 연장해놓고 여기에 신규시설자금이나 운용자금을 얹어 추가로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금융기관들의 지급보증 기피로 인해 신규설비자금이나 급한 운용자금은 커녕 상환자금도 부족하게 생겼으니 기업의 자금사정은 더욱 어렵게 된 것이다.
보증보험등 금융기관의 부실을 해결하고 회사채 발행등 기업 자금조달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는 경제의 어느 부분엔가 다시 또 다른 부담을 지워야만 한다.
88년부터 시작됐던 무리한 기업공개드라이브와 분식결산·부실감사는 이처럼 아직도 우리 경제의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는 것이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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