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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연장 순례] 뉴저지 아트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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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7월 12일 미국 뉴저지주 뉴아크 시내의 한 도로. 흑인 택시 기사 존 스미스는 자신의 택시 앞에 이중 주차해 놓은 경찰차를 피해 빠져나가다 도로교통법을 위반해 현장에서 적발됐다. 그는 수갑을 채우려는 경찰에 거세게 반발하다가 결국 경찰서로 끌려가 늘씬 얻어맞았다. 큰 부상을 입은 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가 끝내 경찰서 유치장에서 숨졌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사건은 6일간 계속된 뉴아크 폭동에 불을 붙인 도화선이었다. 폭동과 폭력, 약탈이 계속됐고 경찰과의 충돌로 23명이 사망하고 72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5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체포됐다. 자산 손실액은 1000만 달러가 넘었다. 당시 흑인들이 겪고 있던 인종차별과, 실업, 가난, 열악한 주거 환경에 대한 불만이 순식간에 터져나온 것이다.

브리지 스트리트와 잭슨 스트리트 브리지는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도로가 폐쇄됐다. 통행금지 조치가 해제된 후에도 뉴아크 도심에 밤길을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백인과 흑인 중산층들은 교외로 이사를 떠났다. 뉴아크의 인구는 1900년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슬럼가로 쇠락해버린 도심은 우범 지역으로 바뀌었다.

뉴아크는 미국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뉴저지 주에서 가장 큰 도시다. 인구는 55만명. 한때 미국 5위의 소비 도시였다. 철도는 물론 고속도로 4개 노선이 뉴아크를 통과한다. 시내에 국제공항까지 있다.

하지만 뉴아크의 랜드마크로 군림했던 빌딩들은 텅텅 비어갔다. 폭동 이후에 지은 오피스 빌딩도 도로쪽에 출입문을 내지 않았다. 뉴아크에 있는 사무실로 통근하는 사람들도 빌딩 사이로 난 구름다리 통로로 출근했다가 일이 끝나면 곧장 퇴근해버렸다. 뉴아크 펜 스테이션에서 사무실 빌딩을 연결하는 스카이웨이를 이용하면 바깥 도로에 발을 디디지 않아도 된다. 밤까지 도심에 남아 있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펜 스테이션에서 뉴욕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뉴아크 도심으로 들어올 리도 만무했다. 도시는 낮시간대인 하루 8시간만 열려있다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반쯤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볼만한 공연 한편 보려면 뉴아크 시민들은 뉴욕행 기차를 타야 했고, 뉴욕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퇴근 후 브로드웨이나 링컨센터 공연을 관람한 후 뉴아크행 막차를 타야 했다.

뉴욕·피츠버그·클리블랜드에 이은 도심 재생 프로젝트

1997년 뉴아크 폭동 30주년이 되는 해 개관한 뉴저지 아트센터(NJPAC)는 쇠락해가는 도심을 문화로 되살리는 충격 요법이다. 이미 뉴아크에 앞서 클리블랜드와 피츠버그.뉴욕에서 성공 사례를 볼 수 있다. 클리블랜드는 대공황 이후 미국 도시 가운데 맨먼저 파산을 선언했지만 플레이하우스 스퀘어, 유클리드 애브뉴의 영화관과 보드빌 극장 4개가 성공하면서 포르노와 마약으로 얼룩졌던 다운타운이 업그레이드됐다. 한때 남부럽지 않은 철강도시에서 공해 도시로 전락한 피츠버그도 베네덤 아트센터 개관 이후 도시 전체에 재생의 불씨를 당겼다. 뉴욕 링컨센터는 건축이나 도시 계획 측면에서 문제가 많긴 하지만 어쨌든 뉴욕을 미국의 공연 메카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70년대 마약과 헤로인 거래로 유명해'니들 파크(바늘 공원)'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브라이언트 파크와 웨스트 사이드를 뉴욕 최고의 주거지로 바꿔놓았다.

뉴아크에서 반경 8.7㎞에 사는 뉴저지 주민만 해도 46만명이나 된다. 뉴아크와 인근에 사는 100만명 가량이 고급문화를 즐기려면 뉴욕 맨해튼으로 건너가야 한다. 1986년 7월 1일 흑인 최초로 뉴아크 시장에 취임한 샤프 제임스(1936~)는 아트센터를 짓지 않으면 도심을 되살릴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는 워싱턴으로 가서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잭 켐프를 만나 지원을 요청했다. 켐프는 대뜸 이렇게 소리쳤다.

"뉴아크에 아트센터를 짓겠다니 창피하지도 않소? 노숙자, 무주택자, 에이즈 환자에 대한 대책 마련이 더 시급하지 않느냐 말이오."

시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대공황 때도 브로드웨이엔 불이 꺼지지 않았어요. 벽돌과 시멘트로 건물은 지을 수 있지만 실의에 빠져 신음하는 영혼을 구할 수는 없어요."

뉴아크 도심에 공연예술센터를 건립하기 위한 태크스 포스가 출범한 것은 1986년 12월. 이듬해 6월 밀리터리 파크 건너편 부지를 문화지구로 지정했다. 그 전에도 선거가 있을 때마다 아트센터를 지어 주겠다는 공약이 난무했으나 번번이 백지화되고 말았다.

1989년 6월 로렌스 골드만이 NJPAC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뉴아크 정치발전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엔 최초의 흑인 시장 당선을 위해 팔걷고 나섰다. 그는 대학 교수를 그만 두고 뉴저지 주 패터슨에서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사무실을 운영 중이었다. 뉴욕 이스트 리버에 있는 루즈벨트 섬 뉴타운 개발 계획에도 관여했다. 무엇보다도 뉴욕 카네기홀의 부동산개발 팀장을 맡아 인근 주차장 부지에 60층짜리 오피스 빌딩을 지어 카네기홀의 수입원을 10배로 불려놓은 사람이다.

샤프 제임스 시장과 로렌스 골드만 회장의 끈덕진 로비로 1989년 9월 미 하원 예산심의위원회는 NJPAC의 설계비용으로 120만 달러의 예산을 승인했다. 1991년엔 뉴저지 경제발전공사가 부지 구입비 마련을 위해 면세 수익채권을 2150만 달러어치 팔았다. 1993년 1월 경제회복기금에서도 4000만 달러를 내놓았다. 1993년 5월 NJPAC가 들어설 자리에 있던 밀리터리 파크 호텔 건물이 해체됐고 같은 해 10월 착공식이 열렸다. 1995년 3월 크리스틴 토드 휘트먼 뉴저지 주지사는 1997년 개관 일정에 맞춰 공사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4400만 달러를 빌려주기로 했다. 미 연방정부 상공부 경제개발국에서는 시어터 스퀘어 건설을 위해 NJPAC에 200만 달러를 제공했다. 이듬해 3월에는 120년전 뉴아크에서 창업해 세계 굴지의 보험회사로 성장한 프루덴셜에서 350만 달러를 기부했다. NJPAC의 대극장은 '프루덴셜 홀'로 명명됐다. 프루덴셜 재단은 2004년 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써달라고 1000만 달러를 추가로 내놓았다.

주변에 고급 레스토랑, 아파트 들어서

바튼 메이어스가 설계를 맡은 NJPAC 건물은 주변 공장지대나 오래된 철교 등과 잘 어울리면서 관객에게 부담없고 편안한 느낌을 주도록 붉은 벽돌로 마감했다. NJPAC 앞 파크 플레이스(Park Place)는 뉴아크 출신의 재즈 가수 사라 본(1924~1990)의 이름을 따서 '사라 본 로드'로 명명됐다. NJPAC의 개관으로 주변 지역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고급 아파트들이 하나 둘씩 들어섰고 밤늦도록 문을 여는 레스토랑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NJPAC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고 인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아이리시 펍도 두 곳이나 생겼다. 어틀랜틱 리그 소속의 마이너리그 야구팀 베어스가 인근으로 홈구장을 옮긴 데 이어 MBA 농구팀 넷츠와 아이스하키의 강자 데블스의 새 경기장도 가까운 곳에 들어섰다.

2006년 7월에는 브로드스트리트 스테이션과 펜 스테이션을 연결하는 뉴아크 경전철도 개통됐다. NJPAC로 가려면 NJPAC/Center Street Station에 내리면 된다. NJPAC 바로 옆에는 연주자를 위한 아파트 2동과 콘도미니엄이 들어설 계획이다. NJPAC의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는 '뉴저지의 중심을 발견하세요(Discover New Jersey's Center)'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NJPAC는 개관 당시 기준으로 미국의 공연예술센터 가운데 예산 규모 6위를 기록했다. 전체 예산 중 공연기획(40%)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예술교육(13%) 프로그램이다. 각급 학교와 연계해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공연을 보여준 다음 직접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지도하는 '연극학교'가 대표적이다. 세계 굴지의 금융회사인 JP 모건 체이스가 후원하는 야외 무료 재즈 공연'사운드 오브 더 시티'도 인기다.

NJPAC를 포함한 뉴아크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의 성공에 힘입어 샤프 제임스 뉴아크 시장은 지난해 은퇴할 때까지 무려 20년간 다섯 차례 시장을 연임했다.

◆공식 명칭: New Jersey Performing Arts Center

◆개관: 1997년 10월 18일

◆홈페이지: www.njpac.org

◆객석수: 프루덴셜 홀 2750석, 빅토리아 홀 514석

◆부대 시설: 루센트 테크놀로지 예술교육센터, 캬바레 시어터, The Chase Room(리허설 룸), Parsonnet Room(후원자 라운지), Theater Square Grill(레스토랑), Calcada(야외 카페)

◆건축가: 바튼 마이어스(Barton Myers)

◆음향 컨설턴트: ARTEC

◆건축비: 8000만 달러

◆상주단체: 뉴저지 심포니(음악감독 네메 예르비)

◆교통: 뉴저지 경전철 NJPAC/Center Street Station

◆주소: 1 Center Street, Newark, NJ 07102

◆매표소: +1-888-466-5722 (낮 12시~오후 6시,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3시)

◆기타: 영화'A Beautiful Mind'(2001년)의 로케 장소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lull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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