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없는 소녀'에 사랑의 메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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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는 한쪽 귀가 막혀 잘 들을 수 없어요. 대답을 잘 못해도 화내지 마세요."

지난 3월 서울 경희여중 3년 김정환(56.여)교사는 학생 신상카드를 정리하다 천영미(15)양의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 평소 千양의 답변이 좀 시원찮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신체적 문제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金교사는 곧바로 千양을 불러 살펴본 결과 오른쪽 귀가 아예 없었다. 귓구멍이 완전히 막힌 상태로 태어난 것이다. 왼쪽 귀도 청력에 문제가 있었다.

千양의 부모는 딸의 불행에 가슴이 아팠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그동안 치료는커녕 검사도 제대로 못했다. 千양은 청력이 약하다 보니 자랄수록 발음이 부정확해졌다. 또 남들이 볼까봐 항상 오른쪽 귀 부분을 머리칼로 가리고 다녀야 했다.

이런 딱한 사연을 들은 金교사는 경희의료원에 편지를 보내 "영미가 제대로 진찰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병원 측은 의사.간호사들이 5백만원의 성금을 모아 지난 5월 수술을 통해 千양의 오른쪽 귀에 달팽이관을 달아줬다. 千양은 "세상의 소리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며 기뻐했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제대로 알게 된 것도 처음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귓바퀴가 없었다. 千양의 급우들이 '예쁜 귀를 달아주자'며 성금을 모았다. 교사들과 학부모도 동참했다. 전교생이 千양 돕기 바자도 열었다.

한 학부모는 외판원으로 번 1백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千양은 12일 이렇게 모인 1천1백85만원의 성금을 전달받았다. 내년 3월에 강남의 모 성형외과에서 몸의 연골조직과 피부를 이식해 새 귓바퀴를 만드는 대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千양은 "내년에 예쁜 귀를 갖게 되면 더욱 열심히 공부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간호사의 꿈을 이루겠다"며 환히 웃었다.

김정하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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