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참뜻」/최종고(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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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야 모두 벌써부터 「대통령 만들기」 작전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대통령제를 채택해 왔지만 솔직히 그동안 시대적 상황속에서 그때마다 특정인물이 특별한 과정으로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고,이제부터 완전 경선의 대통령이 뽑힌다니 역사의 한 전기인 것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공개적으로 대통령 자질론이나 선출방법론이 치열하게 전개될 조짐이다. 한편으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는 민주주의의 은총을 만끽하는 것 같기도 하고,한편으론 힘있는 자는 누구나 「대통령병자」가 될 위험도 엿보인다. 경선이란 제도때문에 다시 미국식 대통령선거를 배우려하기도 한다.
○서구와는 큰 차이점
며칠전 연구실로 어떤 분이 「우리나라에서 왜 대통령이란 말을 쓰느냐」고 전화하면서 영어의 President란 말을 왜 굳이 대통령으로 번역했느냐고 물어왔다.
알다시피 프레지던트란 공화국의 대통령만이 아니고 의장·총재·총장·회장 등 광범하게 쓰이는 용어다. 어원은 분명 라틴어의 「프레지데레(Praesidere)에서 유래한 사회한다,주재한다는 뜻의 「프리자이드(preside)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연방국인 미국에서 각주의 대표들이 모인 의회의 사회를 맡아 주재하던 인물이 프레지던트였다. 그후 헌법이 부여한 권한과 역대 프레지던트들의 역량으로 점점 강력한 미국식 대통령제로 발전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분석이다.
대통령이란 전통이 없는 동양에 분명 생소한 이 제도는 1864년 중국에서 미국법학자 휘이턴의 국제법학서를 번역한 「만국공법」에서 「합방지수령이 통행지수령」을 「백리새천덕」이라고 음사해 대통령이란 번역어를 찾지 못했다. 그래선지 중국에는 아직도 대통령이란 말이 없어,예컨대 부시총통이라 부른다.
○「대통령병」 조심해야
1868년 일본 후쿠자와(복택유길)가 쓴 『서양사정』에선 「미국은 건국후 의사원을 설치해 대통령을 세우고」라 해 대통령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길준이 『서유견문』(1895년)에서 이런 흥미있는 서술을 하고 있다.
「대개 국민이 많으면 재식과 덕망이 족히 일국을 통어할 자가 반드시 있으니,그러므로 미국은 대통령을 선출하는 법을 갖고 있다. 서양학자중에는 그 법을 채택하는 것이 좋다는 이론을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이는 형편에 이르지 못하고 풍속에 어두워 어린애의 익살에도 미치지 못할 뿐더러,정부 최초의 제도가 피차에 특수한 것이므로 이런 주장을 하는 자가 제왕을 가진 정부의 죄인이라 해도 그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 고종황제 치하에서 유길준은 「대개 국가의 규모가 천만년을 경과해도 불변할 것이 있고 시세를 따라 변할 것이 있으니 그 불변할 것이란 인군이 인민 위에 서서 정부를 설치하는 제도와 그 태평을 도모하는 대권」이라고 했다.
불과 한세기도 안된 개화기의 선각자가 천만년의 군주제를 예견했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다소 논리를 비약하면 한국인의 의식은 아직도 「임금」의 관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란 말을 쓰면서도 실제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경선을 말하면서도 대통령의 마음읽기에 초조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어쨌든 임시정부헌법(1919년)에서 임시대통령이란 말을 썼고 임시약헌(1940년)에서 주석제를 채택했으나,해방후 반세기동안 남한에서는 대통령제를 채택해 아홉번이나 헌법을 개정해온 헌정사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내지 주체사상의 이데올로기 아래 「주석」「수령」이란 이름을 썼지만 실제로는 임금이나 황제보다 강한 절대권을 갖고 대원수에까지 올려 놓았다.
남의 대통령과 북의 대원수,어쩐지 남북은 국가원수의 관념에서마저 대립하는 것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은연중 한국적으로 관념화하는 것같기도 하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이 되면 대통령을 뽑을까,주석을 뽑을까,수상을 뽑을까. 서양식 대통령과 전통적 국왕의 관념을 조화시킬 어떤 명칭을 개발할수 있을까. 이것은 법학자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할 연구과제지만,남북이 통일된 마당에선 어느쪽으로든 권력이 한 개인에게 집중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근원적으로 다시한번 미국식 대통령의 의미가 무엇인지,소련이 대통령제를 택하고 붕괴된후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통령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광범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일본이 대통령제를 취하지 않는다고 민주주의를 안하는 것이 아님을 본다면,대통령이란 명칭과 자리를 두고 남북간에 경쟁을 벌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완전경선대통령 기대
통일이후의 일은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앞에 놓인 새 대통령을 뽑는 일에 제도로서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의 의미를 토착화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서양학자들의 눈에 아시아·아프리카의 대통령제가 압도적 정당,군부집권,개인카리스마적 지배의 위장된 명칭같이 낙인찍히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과연 한국에서 「대통령」은 이제부터 어떤 길을 가게 될 것인가.<서울대교수·법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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