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에 목졸린 고교교육/이덕영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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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우리 교육의 수많은 과제중 가장 시급한 문제라면 아마 고교교육 정상화일 것이다.
고교교육이 대학입시에 예속돼 암기·주입식으로 흘러 사고력·창의성을 키워주지 못하고 있으며 진로교육이 안되고 있다는 점은 보편화된 중등교육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왔다.
교육부가 실업계고교를 확충하는 체제개편을 추진하고 대입제도를 변경한 것도 이같은 문제점을 바로잡아보려는 노력이다.
교육부는 최근 새 대입제도와 관련,일선학교의 파행교육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지자 21일 전국 시·도 교육감회의를 열어 고교교육 정상화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교육부의 절실한 입장과 일선교육감들의 태도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업무설명을 통해 대학정책실장은 새 대입제도를 계기로 고등학교가 입시교육기관에서 탈피하는 발상의 대전환을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장학편수실장은 『대학마다 다른 입시제도 아래에서 특정대학을 기준으로 가르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며 『입시위주의 암기교육에서 탈피하는 교수·학습방법의 혁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토의시간이 되자 조완규 장관은 학교안전공제회법으로 시작된 화제를 얼른 대학입시·고교교육문제로 끌어왔다.
『요즈음 새 대입제도와 관련,일선고교에서 혼란이 일고 있다는데 몇몇 대학 입학을 목표로 가르쳐왔기 때문입니다. 최근 논란을 빚은 일본어 시비도 왜 우리 학생을 서울대에 못들어가게 하느냐는 주장 아닙니까.』 교육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상준 서울시교육감이 말했다. 『오랫동안 학교가 학교답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대학에의 예속성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자리에서 입시교육에서 벗어날 것을 결의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우명수 부산시교육감도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잡아놓고 획일적인 입시교육을 시키는데 대해 교육감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왔다』며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일부 시·도가 제동을 걸었다. 지방의 경우 학원등 사회교육여건이 뒤떨어져 학교의 입시준비에 대한 학부모들의 기대·요구가 만만치 않다는 주장이었다. 교육 정상화 논의는 교수·학습방법 개선이라는 본질적 문제에는 접근해보지도 못하고 보충·자율학습 방법론을 맴돌았다. 새 입시도 기존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듯했다.
결국 회의는 고교교육 정상화 노력이라는 원칙의 결의조차 이끌어내지 못한채 끝났다.
고교교육 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선의 변화를 촉발시킬 중앙당국의 세부실천계획과 수학능력시험·본고사 등 입시문제 유형이 관건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회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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