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껴본 조국의 사랑에 뭉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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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사고무친으로 자라온 저희에게 베푼· 조국의 사랑이 눈물겹습니다.』 중국에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 고 이달 선생의 혈육으로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을 맞아 우리정부가 고인에게 추서하는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받기 위해 한국에 온 중국동포 이소심(53)·이중지(50)씨 남매.
고인은 일제하에서 나라가 망해가자 29세 때인 36년 북만주로 망명해 김좌진 장군을 도와 무장독립운동을 위한 한족 총 연합회를 조직한 인물. 그는 한국광복군의 제1지대 비서, 조선혁명자 연맹 중앙회장 등으로 활약했으며 독립운동가 2세들을 위한 우리말 교육, 저술을 통한 독립운동가들의 사기 진작 등을 위해 애쓰다 42년 중경 화상산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남매는 이달 선생이 세상을 하직할 때 각기 3세, 8개월 등으로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 중국인이었던 어머니 신교결 씨로부터 아버지가 독립을 위해 애써온 얘기를 무수히 들으며 자랐다는 것.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독립운동가의 아내라는 이유로 갖가지 어려움에 시달리다 자살, 소심 씨가 12세 때 동생과 함께 고아가 됐다.
이달 선생의 혈육이 중경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89년 한국방송취재팀이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취재하기 위해 중경에 들렀다는 소식이 중국의 언론에 보도된 것을 소심 씨가 보고 이 취재팀을 찾아가 그들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밝혀졌다.
광복군 동지회 등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정부에 알리고 비행기표와 숙소 등을 제공, 초청해 이들이 아버지대신 훈장을 받게 된 것이다.
인구 1천5백만 명의 중경시 인민대회대표이기도 한 소심 씨는 중경시 여자 중 고교를 장학생으로 졸업, 중경시 위생간부전수학원에서 수학하기도 했으며 성실한 생활자세가 높이 평가되어 최근 주민선거에 의해 인민대회대표로 선출됐다. 그는 또 중광시 경제· 문화 교류 촉진회 이사직도 맡고 있다.
남편이 중경시 TV방송국장이며, 의사인 외아들을 두고 있는 그는 중경시 정부와 그곳에 있었던 임시정부 및 화상산 소재 한인 애국지사 묘역 등을 보전하려는 우리측과의 교량역할도 하고 있다.
상해임시정부는 지난37년 중국 국민당정부주석인 장개석을 따라 중경으로 자리를 옮겨 항일투쟁을 벌였었다.
중지 씨는 부인이 산부인과 의사로 함께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9세 때 고아가된 그는 늘 한국인임을 고집해 사천성에 있는 노동개조대에 수감돼 17년 동안 갇혀 지내야 했던 피눈물나는 기억을 갖고 있다.
한국인이 드문 곳에서 자라온 이들은 『혈육의 정이 그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한국에 계실 때 이이덕이라고 불렸다고 하니 이름으로 봐서 일덕이나 삼덕· 사덕 등의 형제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며 출생지가 충청도인 아버지의 혈육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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