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침체 이래도 좋은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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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월 들어서면서 증권시장이 더욱 맥을 못추고 있다. 대권을 노리는 여야의 핵심 인물들이 최근 회견을 통해 그럴듯한 경제정책을 제시하면서 난국을 이렇게 풀어야 한다는등 다소 들떠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증시는 냉기류에 싸여 있다.
11일 종합주가지수는 한때 5백60선까지 내려앉았다. 4년전의 최저가 수준까지 빠진 것이다. 증권당국도 이제는 백약이 무효며 더이상 예전과 같은 증시부양책을 고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라고들 한다.
현재 증시에 상장돼있는 총 52억2천여만주의 시가총액은 70조원으로 지난 1월 중순의 83조원에 비해 13조원이 줄었다.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보였던 지난 89년 12월의 97조원보다는 무려 27조원이나 빠진 것이다.
그 거대한 액수가 거품으로 제거되면서 투자자들의 고통이 수반되고 기업들의 직접금융 조달사정도 악화되었으며 이같은 상황이 당분간 개선될 전망도 없어 시황은 매우 불안하기만 한다.
증시를 침체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경제전반의 불확실성이다.
물가나 국제수지 등은 제조업 경쟁력의 향상이나 수출증대로 서서히 풀어 나갈 수 있으나 실물경제를 싸고 있는 불안감이 투자심리를 크게 흔들고 있는게 문제다.
정부가 자유화를 선언한 일부 금리를 정책편의에 따라 끌어내리거나 올리는가 하면 느닷없이 유상증자 조건을 바꾸고 회사채 발행물량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당과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는 현대그룹에 대한 여러 형태의 규제조치도 여유자금의 증시유입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시장에서 보여주는 정부의 강력한 관권개입은 「주가의 정치화」현상을 빚어내 투자심리의 안정성을 저해한다. 정부·여당이 또 무슨 금융조치를 취할지,또 어떤 형태의 정치적 제스처를 취할지 모르니 증시에서 빨리 발을 빼는 것이 낫겠다는 삼리가 팽배해지는 것이다.
지난주에 서울에 온 동경증권거래소의 이사장은 스캔들 여파로 주가 폭락사태를 맞고 있는 일본 증시를 예로 들면서 증시가 각종 경제지표 등 이성적 기준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감성적 기준에 따른 주가하락이 가속화되는 것은 시장을 제대로 굴러가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증시는 기본적으로 경제적 기초조건이 좋아야 주가도 오르고 투자자들도 끌어들일 수 있다. 또 정부가 성실하고도 일관성있게 경제운용정책을 추진할 때라야 불확실성도 제거된다.
선거후유증에서 오는 정국혼란이 진정되지 않고 잦은 정책변경이 지금같이 계속된다면 대형주·금융주가가 1만원 이하에서 맴도는 침체국면은 좀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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