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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나를 피 흘리게하고 궁지로 몰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현지 언론들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 용의자 조승희씨가 NBC 방송국에 보내온 우편물을 '멀티미디어 매니페스토(선언문)'로 규정했다. 조씨가 자신의 범행을 개인적 원한 관계가 아니라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으로 포장하고 싶어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현지 언론들은 '유나보머' 사건의 모방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조씨의 수법이 1970년부터 1990년 사이 벌어진 연쇄 폭탄 테러범 시어더 카진스키의 '유나보머 선언문' 사례와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당시 카진스키는 '산업 사회와 미래'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내 현대 기술 문명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게 자신의 범행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유나보머(Unabomber)라는 별칭은 카진스키가 주로 대학(University)과 공항(Airport)에 우편 폭발물을 보낸데서 유래했다.

NBC를 통해 공개된 동영상에서 조씨는 1차 범행 직후 권총으로 정면의 카메라를 겨냥하거나 칼을 들어 보이고, 책상 위에 총알을 늘어놓는 모습 등을 스스로 촬영했다. 그는 2차 범행 직전까지 이 동영상을 23개 파일로 나눠 글 사이사이에 배치하는 등 치밀한 사전 준비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동영상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너는 오늘을 피할 수 있는 굉장히 많은 기회가 있었으나, 나의 피를 흘리도록 결정했다. 너는 나를 코너에 몰아넣고 단 하나의 선택을 하도록 했다. 결정은 네가 내렸다"고 강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33명의 목숨을 앗아간 조씨는 1차 범행 후 NBC 스티브 캐퍼스 회장 앞으로 이 우편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우편물을 수취한 NBC는 19일 오전7시30분(현지시각 18일 오후 6시30분)부터 'NBC 나이트 뉴스'를 통해 조씨가 죽기 전 보내온 동영상과 사진 등을 공개했다. 앵커는 나이트 뉴스를 통해 도착한 우편물을 직접 보여주면서 조씨가 사건 당일 오전 9시1분 직접 작성해 특송 메일로 보냈다고 설명했다. 주소와 우편 코드가 잘못 적히는 바람에 우편물은 당초보다 늦게 도착했다는 게 NBC의 설명이다.

한편 버지니아주 경찰 당국자는 "이 우편물이 이번 수사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동영상 원문

조승희 NBC 방송에 보내온 동영상 공개

시간이 됐다. 거사는 오늘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은 오늘과 같은 참사를 피할 수 있는 천억 만 번의 기회가 있었다.

내게 피를 흘리게 하고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으며 결국 내가 이 선택밖에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네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고 판단은 네가 했다.

이제 네 손에는 씻을 수 없는 피가 묻을 것이다.

너희는 나를 괴롭히면서 즐거워했다.

너희의 즐거움을 위해 나는 머리에 암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아팠으며 심장은 갈갈이 찢어졌고 아직도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떠날 수도 있었다. 날아서 도망갈 걸 그랬다.

하지만 아니… 난 도망가지 않았다.

희생당한 나와 내 아이들과 내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나는 거사를 치룰 것이다.

나쁜 십XX들! 너희는 내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 영혼을 파괴했고 의식을 불태웠다.

너희들이 제거하는 인물이 너희처럼 불쌍하고 하찮은 소년이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런 너희들에게 고맙게도 나는 앞으로 오랫동안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예수님처럼 죽는다.

누가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아?

목구멍으로 쓰레기를 넘기는 기분, 자기 무덤을 파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알아?

양쪽 귀까지 입을 찢기는 기분이 어떤지 알아?

산채로 불에 타 죽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

모욕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기분은 알아?

보는 사람의 재미를 위해 피를 쏟으며 죽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아?

단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너희는 얼마나 많았던지.

벤츠 자동차로도 부족했어? 이 새끼들아!

금목걸이가 부족했냐? 이 속물들아!

보드카와 꼬냑으로도 부족했냐?

넌 모든 걸 가지고 있었어.

(번역: 박주영, 조인스닷컴 http://ap.joins.com)

관련 동영상 보기

[관련화보]조승희가 NBC에 보낸 사진들

박연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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