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핵 동결 실행 없으면 쌀 지원 유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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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가 어제부터 21일까지 평양에서 열린다. 이번 접촉은 6자회담의 '2.13 합의'에 따른 북한의 핵 동결과 대북(對北) 중유 5만t 제공이라는 초기 합의가 무산된 뒤 개최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무엇보다 대북 쌀 지원을 놓고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오락가락 그 자체였다. 남북은 3월 초에 열렸던 장관급회담에서 쌀 지원 문제를 최종 결정짓는 경추위 개최 일시를 4월 18일로 잡았다. 당시 북측은 "쌀 지원과 '2.13 합의' 초기 이행이 무슨 관련이 있느냐" 며 빨리 경추위를 열자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남측은 초기 이행의 시한이 4월 14일인 점을 의식, 그 이후의 날짜를 제시하고 이를 관철했던 것이다. 당시 통일부는 '북한의 이행 여부를 보고 지원하겠다는 전략' '이래도 퍼주기냐'며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달 초 느닷없이 '무조건적인 쌀 지원'을 발표한 것이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2.13 합의 이행에 차질이 생겼지만 북한이 이를 깨겠다는 의사 표시가 없다'는 게 그 배경이었다. 형식적인 남북 대화 채널 유지를 위한 통일부 특유의 '북한 감싸기'가 또다시 발동된 것이다. 처음엔 '초기 이행 여부'를 그렇게 강조하면서 북측의 요구를 거절하다가 이렇게 스스로 원칙을 무너뜨렸다. 이러니 북한이 막대한 지원을 받으면서도 남측의 '상전 노릇'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2.13 합의' 이행의 장애물인 BDA 문제에 대해 미국은 할 수 있는 최대의 양보와 성의를 보였다. 오히려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은 전적으로 북한 내부사정 때문인 것으로 좁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BDA를 핑계로 약속 이행을 미루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쌀 지원과 북한의 '초기 이행'을 연계해야 한다.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불투명하고 언제든지 합의를 깰 수 있는 국가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미의 성의 표시와 양보를 더 이상 조롱하지 말고 초기 합의 조치 이행에 즉각 나서라.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정도 이상으로 무리수를 두게 되면 부러지고 다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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