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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서울시 공무원 퇴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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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토론 참석자들은 ‘공무원 퇴출제’의 효과와 부작용, 개선 방안 등을 놓고 중앙일보 3층 회의실에서 2시간40여 분간 열띤 논쟁을 벌였다. 왼쪽부터 오성호 교수, 권영규 서울시 행정국장, 강치원 교수, 임승룡 서울시 노조위원장, 이병훈 교수. [사진=조문규 기자]

서울시에 인사 혁신 바람이 불고 있다. 무능.태만 직원을 현직에서 퇴출하는 현장시정추진단 도입 계획<본지 3월 2일자 2면>을 밝힌 지 한 달여 만인 16일 대상자 80명을 현장 업무에 투입했다. 사상 초유의 공무원 퇴출제 도입과 관련해 관가를 비롯,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과 김태호 경남도지사 등은 공무원 퇴출제 도입을 찬성하고 나섰다. 그러나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은 "퇴출 같은 인위적인 방법은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논란 속에서도 경기도 성남시와 의왕시 등 전국 130여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등은 서울시의 사례를 앞다퉈 벤치마킹하고 있다.

공무원 퇴출제를 둘러싼 논란의 해답을 찾기 위해 서울시 관계자와 학계 전문가 등이 17일 중앙일보에서 머리를 맞댔다. 열띤 논쟁이 오간 이날 토론은 애초 예상보다 한 시간을 넘긴 2시간40분 동안 계속됐다.

▶강치원=현장시정추진단을 도입한 근거는.

▶권영규=시 공무원 대부분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지만 현저히 업무 능력이 떨어지거나 극히 불성실한 사람도 있다. 이들이 스스로 업무 자세를 고칠 수 있다면 조직 전체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다. 현장시정추진단은 흔히 '퇴출'로 알려져 있지만 시민의 기대에 맞는 일 잘하는 공무원을 길러내기 위한 재교육의 하나다.

▶오성호=서울시를 비롯해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민간부문처럼 치열하게 일하는지 회의적이다. 서울시 직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은 자신들에 대해 국민이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추진단은 이를 고쳐보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강치원=반대의 목소리도 있나.

▶임승룡=꽤 있다. 서울시 공무원은 전임 이명박 시장 때도 무리 없이 업무를 수행할 정도로 성실한 사람들이다. 시는 이번 제도를 도입하면서 묵묵히 일해 온 시 직원 전체를 무능 집단으로 매도했다. 또 '3% 퇴출'이라는 것도 공무원법 등에 보장된 절차를 따른 게 아니다.

▶이병훈=공직사회 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잘못했으니 나가라'는 식의 퇴출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조직에 필요한 적당한 수준의 자극을 넘어 공직사회에 쇼크가 되는 조치다. 과잉 쇼크는 조직의 팀워크를 해칠 수 있다.

▶강치원=기존 평가.감사 시스템으로도 일 안 하는 직원을 걸러낼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권영규=현행 지방공무원법에 따라 업무 태도가 불량한 이들을 직위해제할 수 있지만 이런 규정들은 온정주의로 인해 거의 사문화한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런 퇴출제를 도입한 것이다. 기관장이 멋대로 대상자를 뽑지 않도록 해당 부서장 등 관리자들이 직원 개개인의 업무 태도와 성과 등을 바탕으로 수십 차례 회의를 했기 때문에 공정성에 문제가 없다.

▶오성호=현행 규정으로도 직위해제를 할 수는 있지만 이는 공무원법상의 징계가 아니다. 또 현장시정추진단 배치는 실제 직위해제를 받은 게 아니라 징계로 느껴질 만한 보직을 받은 것뿐이다. 기존 근무평정도 연공제 승진 관행이 굳어진 현재 같은 조직 분위기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직원을 걸러내는 자극이 필요하다.

▶임승룡=담당 팀장.과장이 결정해야 부하 공무원이 움직이는 현 구조에서 하위직 직원들은 스스로 일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팀원 중 누군가 일을 게을리한다면 이는 적재적소에 직원을 배치하지 않은 관리자의 책임이다. 무능한 공무원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지만 무능하다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권영규=직원의 불성실을 모두 관리자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 일시적으로 조직이 경직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건강한 긴장이 흐를 것이다. 또 무조건 자르자는 게 아니라 다시 일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이병훈=우리나라의 노사 관계가 지금처럼 나빠진 것은 외환위기 당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직원들을 일방적으로 잘랐기 때문이다. 반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일본의 기업들은 사용주가 직원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 노사 간 신뢰를 구축했다. 서울시도 여론에 떠밀려 "무능한 직원은 나가라"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다.

▶강치원=해외에도 공무원 퇴출 사례가 있는가.

▶권영규=미국은 예산이 깎이면 자연스럽게 공무원을 내보낸다. 다운사이징(Downsizing)이 상시화된 셈이다. 일본도 직무 성적이나 적성에 맞지 않는 직원 등을 내보냈다는 통계가 있다. 영국은 전체 직원의 3분의 2 이상이 퇴직 연령을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퇴직한다. 퇴직자 중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강제적으로 공직을 떠나는 이가 전체 퇴직자의 37%에 달한다.

▶임승룡=외국과 한국을 평면적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 공무원 퇴출제는 조직 내부에서 의견 수렴이 충분히 이뤄지고 직원들이 그 기준에 동의할 때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강치원=울산시 울주군은 퇴출이 아닌 재교육 방식을 활용하고, 부산시는 퇴출 명단 확정 단계에 노조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는데.

▶권영규=우리도 퇴출이 아닌 재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노조에도 이와 관련한 제안을 해 달라고 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부산시처럼 퇴출 대상자 확정에 노조를 참여시킨다면 노조가 도리어 어려운 입장이 될 수 있다.

▶임승룡=서울시가 만들지 못하는 객관적인 퇴출 기준을 어떻게 노조가 만들 수 있나. 최근 서울시가 분석한 인터넷 여론에 따르면 '평가방법이 잘못됐다'는 의견이 28.5%에 달한다. 퇴출정책을 지지하는 의견은 27.2%에 불과하다. 3~4년마다 인사이동을 시키고 전문성이 없다고 버린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이병훈=통제와 처벌 위주인 조직보다 구성원 간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하는 조직의 작업 성과가 더 뛰어나다는 게 정설이다. 서울시는 경쟁과 통제를 앞세웠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신뢰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지나치게 무능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통제와 처벌만으로는 원하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강치원=퇴출된 직원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없나.

▶권영규=당연히 검토하고 대비한다. 우리는 좋은 부서에서 나쁜 부서로 인사 조치하고 거기에서 다시 일할 기회를 준 것이지 부당노동행위를 한 것이 아니다.

▶임승룡=노조에서는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다.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위법.부당한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 공무원법 위반뿐 아니라 그동안 감사제도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 등에 대해 따질 생각이다.

▶강치원=현장시정추진단 도입을 통해 조직에 일하는 분위기가 뿌리내릴 것으로 보나.

▶오성호=뿌리내릴 것이다. 조직은 사회.조직.개인의 요구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원활히 운영된다. 아직 온정주의가 판치는 공직사회에 충격을 주지 않고 차츰차츰 고친다고 하면 외부에서 이를 용인하겠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긍정적인 격려의 성과가 높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수 있다. 조직의 분위기를 바꾸려면 이번과 같은 충격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이병훈=충격요법이 단기적으론 효율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원 간의 불신 등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권영규=현장시정추진단은 시가 추진 중인 신(新)인사 시스템의 네 가지 요소 중 하나다. 옆에 있는 사람을 적당히 봐주고 함께 술 마시는 게 신뢰가 아니다. 서로 같이 일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새로운 신뢰를 쌓아야 한다. 일시적으로 긴장감이 있지만 길게 보면 조직의 효율이 높아질 것이다.

▶임승룡=신뢰란 행동 양식과 기준으로 쌓이는 것이다. 지금처럼 신뢰가 쌓이지 않은 채 단순히 퇴출제를 도입한다고 조직에서 일하는 분위기가 생길 것이라고 보는 것은 오산이다. 오히려 눈치만 보고, 윗사람에게 아부만 하는 분위기가 생길 것이다.

▶강치원=공무원 퇴출뿐 아니라 규제 완화나 시민 참여 등도 중요한데.

▶권영규=노조나 언론, 전문가들이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것은 외주 프로젝트 등에 맡길 성격의 일이 아니다.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서울대 김광웅 교수 등 자문위원회에서 인사 쇄신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낸다. 서울시는 이것을 참고할 것이다.

▶이병훈=자문위원회도 결국 시 집행부에서 일방적으로 선임한 것 아닌가. 노조나 하위직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임승룡=현장시정추진단처럼 근로 조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도입할 때 가장 먼저 노조와 상의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생략됐다.

▶오성호=노조는 '전부 아니면 아예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노조가 현실적인 대안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면 노조도 파트너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강치원=더 나은 제도를 만들기 위한 의견이 있다면.

▶이병훈=참석자 모두 일 잘하는 '명품 공무원'을 만들자는 취지에는 공감하는 것 같다. 대신 이번 제도가 조직에 미치는 충격의 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제도 시행에 앞서 구성원들의 공감이 선행돼야 한다. 언제든 쌍방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도 필요하다. 또 징계보다는 인센티브를 통해 경쟁시켜야 한다.

▶임승룡=공직의 특성상 '일 잘한다'는 말의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평가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기획 업무를 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현장 업무를 시키면 졸지에 일 못하는 사람이 된다. 서울시 직원 1만 명 중 기능적인 업무를 맡은 사람은 40%에 달한다. 흔히 생각하는 사무직원은 2500명이 채 안 된다. 다수를 차지한 직원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

▶권영규=직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공평하게 운영하도록 노력하겠다.

정리=이수기 기자<retalia@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