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의 수수께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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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통적인 유목민(베두인)의 옷을 입고 달을 등진채 사막 가운데 홀로 서 있는 한 사나이의 실루에트­.
무하마르 카다피는 자신의 전기영화에서 스스로를 몇세기동안 서방세계의 억압에 시달려온 아랍세계의 구세주로 묘사했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영국의 소설가이며 문명비평가인 H G 웰스의 대작 『세계사대계』(전20권)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모습과 흡사하다. 웰스는 이 책에서 예수를 남루한 덧옷을 걸치고 홀로 사막을 걸어가는 전도자로 그려 고독하고 고뇌에 찬 한 인간의 면모를 부각시켰던 것이다.
카다피는 스스로를 통일아랍세계의 창조자며 이슬람의 대예언자라고 믿고있다. 그 카다피에게는 누구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몇개있다.
첫째는 「만년대령」인 그의 계급. 29세 때인 1969년 쿠데타에 성공했을때 그의 계급은 대위였지만 며칠뒤 3계급 특진,대령이 되고는 더 이상 진급을 하지않았다. 일반적 명칭은 국가 최고지도자. 국민을 위한 일에 직함이 필요없다는게 신념이지만 어느나라 국가 원수보다 막강한 힘을 가졌다.
두번째는 그의 「테러철학」·그의 테러유형은 세가지다. 자신을 암살하려는 반대파에 대한 테러,이른바 「세계 해방투쟁」을 위한 테러,자신의 독특한 정의감을 실현하기 위한 테러.
세번째는 그의 여성관. 그는 이슬람국가중에서 유일하게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다처제를 비난하며 각급 학교에 남녀공학을 실시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여자 사관학교를 설립,여성의 병역의무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주변에는 여성경호원이 늘 따른다.
마지막으로 그의 독특한 성격도 수수께끼의 하나다. 그는 금주·금연에 수줍음을 잘타며 유독 흰색을 좋아한다. 그러나 군중집회가 있는 날이면 견장이 달린 흰색 군복차림에 흰색 벤츠를 몰고 나타나 주먹을 휘두르며 미국을 매도하고 아랍의 정의를 외친다. 그 카다피 대령의 「정의」또한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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