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확고해진 중국 개방노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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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국이 다시 개혁·개방길에 나설 채비를 단단히 갖추고 있다. 지난달 20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보름동안 회의장 안팎에서 온통 개혁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3일 그 막을 내렸다.
89년 천안문유혈사태이후 중국을 장악해온 보수세력들이 이번만큼 궁지에 몰리고 비판받은 일은 없을 정도로 개혁의 소리는 높았다. 대회장 안에서는 그동안 개방속도가 느린데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밖에서는 당과 군부를 비롯한 각급기관,관영 언론매체들은 「개혁개방 백년불변」이라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만들었다.
회의초기에는 상당한 저항에 부닥쳤던 개혁파들이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사태를 거의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파의 이붕 총리가 첫날 개막연설 내용에서 개혁의 필요성을 담으라는 등소평의 요구를 조금만 반영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고 있는 것등이 바로 그러한 예다.
뿐만 아니라 개혁파 복귀의 불길을 댕겼던 등소평의 소위 남순구화가 보수세력의 저항으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다가 최근에 이르러서야 대중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있다. 그것도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던 당기관지 인민일보와 좌파 이론가들의 발판인 광명일보 등에 게재되고 있어 지금까지의 노선투쟁에서 개혁파가 유리한 고지에 올랐음을 알리고 있다.
지난 89년 천안문의 유혈사태이후 뒷전으로 밀려났던 개혁주의자와 경제실용노선 추종자들을 다시 불러들일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개혁파의 복귀를 두고 그동안 이붕 총리를 비롯한 보수파 인물들이 물러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있었으나 당장 급격한 숙청이나 인사개편을 없을 것 같다.
그런 인사는 올 가을에 소집될 공산당대회에서나 있을 듯하다. 이번 전국인민대표자 대회에서의 개혁파들의 공세는 그러니까 공산당대회에서의 개편에 대비한 노선투쟁과 권력투쟁의 성격이 짙은 사전 정지작업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바람이 정치적 개혁까지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정치바람이 불면 등소평의 신념이나 정치행적으로 보아 개방바람은 언제 주춤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거나 비판세력을 공격하고자 할때는 개방세력에 의존하곤 했다가 상대를 제압한 다음에는 보수파와 타협해 다시 개혁파에 압력을 가하는 수법을 구사해 왔다. 개혁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등의 입에서 정치개혁에 관해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도 교조적인 이념에 집착하지 않고 실용적인 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다만 「개혁·개방」으로 자기네 국민과 이웃나라에 잔뜩 기대만 부풀렸다가 천안문때 처럼 분출하는 욕구를 억누르는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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