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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자의종가음식기행] ⑤ 충북 보은 보성 선씨 종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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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보성 선씨 종가의 종부 김정옥(左)씨가 둘째딸 선소정씨에게 씨간장에 대한 내력을 들려주고 있다. [사진=쿠켄 제공]

"씨간장이라는 말 들어 보셨어요? 우리집 장독대에는 대물림된 간장독 2개가 있습니다. 농협예술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350년은 됐을 거라고 하네요. 고려 때 명나라에서 사신으로 왔다 귀화한 보성 선씨의 18대 손 영흥공이 제사를 물려받으면서 씨간장 항아리도 함께 전해 받았다는 말씀을 시어머니로부터 들었습니다."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솔숲 우거진 99칸 우람한 보성 선씨 종가. 종부 김정옥(55)씨는 종가의 역사만큼 오래된 씨간장 이야기를 꺼냈다. 아닌 게 아니라 안채 뒤뜰 볕 바른 자리에 마련된 장독대는 따로 담을 두르고 대문에 빗장까지 걸어 두었다. 범상치 않은 공간임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장독대 가운데로 들어갔다. 몸집 큰 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짚으로 꼰 새끼줄 사이사이에 숯과 종이 고추를 끼운 금줄을 걸고 있었다. 바로 변하지 않는 장맛을 전하는 신령스러운 씨앗장독이다. 씨앗장독에는 종이 버선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잡신들은 얼씬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제사 때나 맏며느리가 아기 낳을 때, 어른들 생신 때 씨간장으로 음식 맛을 냅니다. 줄어든 양만큼 해마다 햇간장을 만들어 채워 넣지요. 우리집 간장은 달이지 않고 햇볕에서 숙성시켜 장 색이 검고 단맛을 냅니다."

스물다섯 살에 시집온 뒤 31년간 안채 부엌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다는 김씨. 그는 한 끼에 외상(한 사람 몫으로 차린 음식상) 20개를 차리고 1년에 10회가 넘는 제사를 모시는 큰 집안 살림에 찌든 종부의 모습이 아니었다. 밝고 고왔다. 비결이 궁금했다.

"처음 시집온 3년간은 도망칠 궁리만 하다가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숙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체념을 하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더군요. 특히 요리에 취미가 있어 시할머니께 요리를 배우는 낙도 있었고요. 그래서 한때는 요리 강의도 다녔답니다."

종부는 모양이 예쁘고 색이 고운 음식을 잘한다고 했다. 메밀가루로 전병을 지질 때도 찹쌀가루 반죽을 작게 구워 도토리 전 위에 올리고, 푸른색의 파와 붉은 색의 대추를 고명으로 놓았다. 멋과 맛을 낼 줄 아는 '요리의 달인'이다.

집에서 키우는 닭요리를 할 때는 어른 상에는 뼈를 발라 양념을 했고, 젊은이들의 상에는 씹는 맛을 즐길 수 있게 뼈째로 양념을 한다고 했다. 집간장으로 간을 하면 닭고기의 누린 맛을 없애 준다는 '비책'도 귀띔해 줬다. 귀한 손님이 오면 마른 해삼과 쇠고기를 갈아 양념한 뒤 달걀을 입혀 구워낸다. 그 맛에 반해 종가를 다시 찾는 손님도 많다고 한다. 인삼을 잘게 채 썰어 왕새우.마늘.후추.생강을 넣어 볶는 날은 사랑채 큰손님이 왔을 때다.

종가에는 지금도 끼니마다 30명이 넘는 대식구가 식사를 한다. 고시원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조선 말 관직에 있었던 영흥공의 아들 선정훈(1888~1963)은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자존은 우리식 교육밖에 없다"는 신념으로 집 앞에 관선정을 짓고 무상교육을 14년간 했다. 그런 조상의 유지를 받들고 넓은 집을 활용하기 위해 고시원을 차렸단다.

"경비 충당을 위해 최소한의 돈을 받긴 하지만 할아버지의 뜻을 그르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머리를 맑게 한다는 김을 씨간장에 싸먹게 하고, 무쇠솥에 사골을 고아 때때로 영양 보충을 시켜 주는 정성만은 옛 사람들의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연자 한배달우리차문화원장

◆메밀전병(4인분)

·재료-메밀가루 1컵, 찹쌀가루 1컵, 전분 2큰술, 물 2컵, 소금 1작은술, 대추 5개, 대파 1뿌리, 식용유 약간, 집간장 조금.

①메밀가루와 찹쌀가루.전분을 한데 섞어 소금을 넣고 반죽해 30분 정도 둔다. ②대추는 돌려깎기 한 뒤 씨를 빼고 돌돌 말아 0,1㎝ 두께로 썬다. 대파는 어슷썰기 한다. ③반죽 1큰술을 팬에 놓아 앞뒤로 지진 다음 대파와 대추를 고명으로 올려 다시 한번 살짝 익혀 집간장에 찍어 먹는다.

◆닭산적(4인분)

·재료-닭 1마리, 대파 1대, 다진 마늘 1큰술, 생강 1쪽, 홍고추 1개, 실고추 약간, 집간장 3큰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청주 1큰술. 소금 약간.

①닭은 깨끗이 손질해 씻은 다음 물기를 없애고 뼈를 발라낸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썬 다음 잔칼질을 한다.②소금.후추.생강.청주로 밑간을 한다. ③집간장에 물엿.마늘.파.참기름.깨소금을 넣은 뒤 양념이 고루 배어들도록 주물러 2시간쯤 재워둔다. ④홍고추와 대파는 어슷썰기 하고 실고추는 3㎝ 길이로 잘라 둔다. ⑤달궈진 팬에 닭을 넣어 앞뒤로 뒤적이면서 15분쯤 익힌다. 홍고추와 파를 넣고 다시 한번 살짝 익혀 실고추를 뿌려 그릇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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