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후 통화환수는 무리없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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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총선 막바지에 금융기관에 예치된 자금이 선거용으로 대거 풀려나감으로써 앞으로의 기업자금사정과 물가에 대한 우려가 높다.
본격적인 선거기간인 이달 들어서만 은행의 요구불예금이 2조원이상 빠져 나갔다. 이는 작년 같은기간에 비해 무려 5배 이상이나 감소규모가 확대된 것이다. 여기에 자기앞수표로 발행된 액수와 총통화지표에 잡히지 않는 단자회사등 제2금융권의 부동자금,증권사의 고객예탁금을 합치면 시중으로 빠져나온 돈의 규모는 훨씬 늘어난다.
그러나 같은 기간에 저축성예금이 1조원 가량 늘었다고 하니 결국 1조원이상의 현찰이 시중유통에 추가된 셈이다. 이처럼 시중 유동자금이 늘어났다는 것은 산업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이 제한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시중에 풀려난 현금은 소비쪽으로 흘러 물가를 자극하게 될게 정한 이치다.
선거와 관련돼 인출된 돈은 나갈때는 뭉칫돈으로 나가지만 일단 나간 뒤에는 푼돈으로 분산돼 단기간에 회수가 어렵다는 특징을 지닌다. 다시 회수된다 해도 대부분이 저축성이 아닌 요구불예금으로 입금되고 상당부분은 소비성으로 유통되므로 전체 통화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
시중통화가 적정수준을 넘어 방만해지면 통화당국은 이를 회수하기 위한 작업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23일부터 총2조5천억원의 환매채를 매각하는등 통화의 고삐를 조이기 시작했다. 은행권에서는 이러한 통화회수를 예상해 콜금리를 인상하면서 단기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어려운 경제사정에 겹쳐 이런 금융통화당국의 긴축정책은 기업자금사정을 크게 압박하게 될 것이다. 그 파급영향이 걱정스럽다. 최근의 잇따른 기업의 부도사태가 증명하듯이 우리 경제가 수출부진과 내수시장의 불경기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마당에 지나친 금융긴축이 가져올 부작용은 예측을 불허할 만큼 기업의 위기의식을 자극하고 있다.
다행히 재무부측은 당분간 총통화 증가율이 적정선을 유지할 것 같아 무리한 시중통화 환수는 안해도 되리라는 판단인듯 하다. 직접적인 환수방법 보다는 일시적으로 중개어음금리를 인상하든지,회사채 유통수익률을 올리는등 간접적인 부동자금 회수방법을 택함으로써 기업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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