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당이 부담스런 후보들/곽한주 기동취재반(총선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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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호남지역 유세장에서는 심심찮게 「옷」 얘기를 들을수 있다.
『옷을 잘못 입었다고들 하는데 옷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찍어야한다.』(보성 이용식 민자당후보)
『비록 겉옷은 바꿔 입었으나 내복은 바꿔 입지 않았다』(광주동구 윤재걸 국민당 후보)
『광주 발전시키는데 옷색깔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광주서갑구 이영일 민자당 후보)
자신의 「옷」,즉 소속정당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까지 등장한다.
『대통령선거땐 김대중 선생을 찍더라도 이번 선거엔 나를 찍어달라.』(나주 나창주 민자당후보)
『민자당이 싫다고 「선생님당」이 싹쓸이 하도록 해주면 안된다.』(광주동구 조규범 민자당후보)
『꿈속에서도 민주당이 나타난다.』(해남·진도 곽봉근 신정당후보)
여기에다 국회의원에 당선만 되면 민주당에 입당하겠다고 공언하는 무소속 후보들이 안평수(영광­함평)·김환수(장흥) 후보 등 한둘이 아니다.
광주지역 재야단체에 의해 「시민후보」로 추대된 이문옥 후보(광주동구·무소속)도 당선후 민주당 입당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바있다.
이 때문에 김대중 민주당 대표는 『무소속 후보들은 당선돼도 당에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발언,민주당 후보 지원사격에 나서야 했다.
그렇다면 민주당 이외의 상당수 후보들이 「옷」 보다는 「인물」을 내세우고,「자기옷」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비정상적인 현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다름아닌 『DJ가 가지를 꽂으면 썩은 고목에서도 금배지 꽃이 핀다』는 호남의 「신화」 때문일 것이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이 호남신화가 타파되려면 호남유권자들의 건전한 판단을 호소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호남푸대접은 여전하다』는 탄식에다,『6공정권은 TK정권』『부산·경남이 뭉쳐 YS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현실인식이 팽배한 것이 호남의 실정이다.
이런 판에 지역감정의 가장 큰 피해자라 할 수 있는 호남사람에게 먼저 지역감정을 털어버리라는 요구는 무리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광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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