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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반도체·조선, 3년은 버티겠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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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반도체
일본, 대만과 손잡고 '타도 한국' 노려
D램 영업이익률은 2년 새 반 토막으로

'낸드플래시 메모리 63%, D램 45%, 10인치 이상 대형 LCD패널 44%, PDP패널 50%'(시장조사기관 아이서플라이.가트너 집계). 지난해 한국 업체들의 세계 반도체 관련 시장점유율이다. PDP패널 1위만 일본 마쓰시타에 내줬을 뿐 반도체와 LCD패널의 1, 2위 업체는 모두 한국 기업이다.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성적표다. 무역협회와 삼성경제연구소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한국 업체가 최소한 3년은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술력.마케팅.제품력 등에서 앞서 있기 때문이다. 또 대형 설비투자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 이들 분야에서 세계 경쟁업체들의 설비투자 수준을 볼 때 당분간 따라올 적수가 많지 않다. 그러나 제품 가격 하락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과 대만.중국 연합군들의 공세가 본격화되고 있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 갈수록 나빠지는 수익=지난해 말 이후 석 달간 D램은 50%, 플래시 메모리는 30% 이상 가격이 떨어졌다. 이에 따라 2004년 이후 40%를 넘나들던 한국 반도체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올 들어 10%대까지 하락했다. 삼성전자의 1분기 성적표가 시원찮은 이유다. 디스플레이 쪽의 수익 악화는 더 심하다. LCD패널 분야에서 이미 저가형은 대만 업체들이 장악했다. 한국 LCD 제조업체들은 이익을 낼 수 없는 소형 패널을 포기하고 고가의 대형 TV용 제품에 진력하고 있다. 이를 LCD 업계에선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고 부른다. 작은 패널은 포기하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좀 더 큰 패널 쪽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 상황이 예상보다 못하면 곧바로 수익 악화로 이어진다.

◆ '타도 한국'의 삼각편대=일본과 대만 업체들이 연대해 중국이나 대만에 공장을 짓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업체인 엘피다와 손잡고 D램 공장 증설에 나선 대만의 파워칩은 일본 르네사스와도 제휴해 중국에 디지털가전용 비메모리반도체(LSI)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카모토 엘피다 사장은 "과거 일본도 지금의 삼성전자처럼 한발 앞선 대규모 투자로 시장을 선점했었다"며 "우리는 전열을 정비해 3년 안에 D램에서 1위 자리를 탈환하겠다"고 호언했다. 대만의 난야도 독일 키몬다와 신제품 공동 개발에 들어가는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전준영 삼성전자 상무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기술과 투자에서 후발 주자에게 따라잡히는 순간 경쟁력을 잃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경쟁사보다 1~2년 앞서 차세대 투자에 나서는 전략으로 반도체 부문에서 경쟁 업체의 10배에 달하는 이익을 거둬왔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런 수익을 낼지는 미지수다. 일본 업체들은 '찬란했던 시절'을 되찾기 위해 연구개발(R&D)을 강화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LCD 패널을 생산하는 일본 샤프는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을 한꺼번에 높이기 위해 지난해 말 세계 최초로 8세대 라인 가동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에야 8세대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플렉스 원낸드'같은 제품 원천기술이 살 길

삼성전자는 지난달 대만에서 열렸던 삼성모바일포럼에서 모바일용 퓨전 반도체인 '플렉스 원낸드'를 선보였다. 이는 삼성전자가 최초로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를 세계 시장에 소개한 '사건'이었다. 삼성전자는 세계 D램과 플래시메모리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제품의 원천기술은 미국.일본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일류기업이 되는 것은 세상에 없던 독자적인 상품을 내놓는 능력에 좌우된다. 조 후지오 도요타자동차 부회장은 지난해 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쫓아올 때는 간단하지만 막상 가까이 오면 어렵다.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설계.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단계가 되면 격차는 쉽게 줄지 않는다."고 밝혔다. 원천기술 확보 능력이야말로 일류의 산업경쟁력이라는 것이다.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미래 경쟁력은 단순히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는 게 아니다. 한국산 원천기술을 세계의 경쟁자들에게 파는 진정한 산업의 리더가 돼야 한다. 또 삼성경제연구소는 '통신+멀티미디어 기능 D램' 등과 같은 복합.퓨전반도체, 최근 하드디스크와 서버 등으로 사용 범위가 늘고 있는 솔리드스테이트디스크(SSD) 같은 신개념 반도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선
중국, 한국 제치고 올 1·2월 수주량 1위
조선소만 1000개 … LNG선 기술도 확보

'연간 건조능력 819만CGT(표준화물선 환산 t수). 지난해 세계 전체 수주 잔량(1억1834만CGT)의 36.4%인 4290만CGT 수주. 한 척에 2억 달러를 웃도는 액화천연가스(LNG)선의 지난해 발주량 33척 중 28척(85%) 수주'.

한국 조선산업의 화려한 성적표다. 지난해 세계 10대 조선소(수주 잔량 기준)에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이 나란히 1~3위에 오른 데 이어 나머지 4개사 등 모두 7개사가 이름을 올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미국이 쌀개방 카드를 꺼내지 못하도록 한 것이 바로 미국 조선산업을 개방하라는 카드'였다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말은 한국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가늠케 한다. 조선은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에 이어 단일품목으로는 수출금액 4위지만, 국산화율은 91%에 달해 한국 산업 '효자 품목'이다. 그러나 조선업에서도 중국의 추격은 차츰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 과감한 투자가 경쟁력의 원천=1980년대 이후 공급과잉을 우려한 일본이 투자를 대폭 축소할 때 한국은 반대로 90년대부터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조선업 호황이 오면 일본을 따돌릴 수 있는 기회라는 판단에서다. 일본은 50년대부터 세계 조선시장에 최강자로 군림했던 조선 강국. 한국은 2000년대 들어 일본을 완전히 따돌렸다. 공격적인 투자와 적극적 기술 개발로 고품질과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중공업 김징완 사장은 "극지 운항용 LNG선 등 신개념.차세대 복합 고부가가치 선박의 연구개발로 계속 세계 1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의 거센 도전=중국은 지난해 선박 건조량 기준으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올랐다. 급기야 올 1, 2월에는 세계 1위 한국마저 제치고 수주 1위를 차지했다. 그동안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벌크선 위주의 발주를 했지만, 최근에는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선도 수주하기 시작했다. 한국조선협회 한장섭 부회장은 "중국이 빠르게 치고 올라온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실제로 LNG선.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과 건조 기술을 이미 확보해 놓은 상태다. 생산성이 문제일 뿐이다.

◆ 험난한 세계 1위의 길=무역협회와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이 2010년까지는 세계 1위를 확실히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발표한 '선박공업 중장기 발전계획'에서 2015년이면 중국이 조선시장 세계 1위에 올라설 것이라고 공언했다. 최근 중국에 조선소를 세운 STX그룹 강덕수 회장은 "중국에는 조선소만 1000개가 넘어 앞으로 수주.건조량에서 모두 한국을 앞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 조선업은 생산현장 인력 노령화와 기술인력 유출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계 헤드헌터들이 한국의 현직 기술인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수백 명의 퇴직 조선소 인력이 중국 조선소에 둥지를 틀고 있다.

크루즈.친환경선박 등 새 주력 선종 발굴을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이제명(39) 교수는 매주 목요일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조선소로 간다. 대학 졸업 학위가 없는 생산직 근로자 40명에게 '건조공학'을 강의하기 위해서다. 이 교수 외에 7명의 부산대 교수가 조선소 파견 강의를 한다. 2년 과정을 마친 근로자는 부산대 졸업장을 받는다. 이 교수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근로자를 이론으로 무장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조선이 세계 1위를 지키려면 인재 확보가 필수다.

삼성경제연구소 임영모 수석연구원은 "한국 주력 선종인 유조선.컨테이너선 등은 중국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며 "크루즈선.친환경선박 등 새로운 주력 선종을 발굴하고, 해양플랜트 등 관련 산업으로 다각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형 조선업체의 전문화도 요구된다. 이들은 고급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중국의 추격을 쉽게 허용할 수 있다. 한 단계 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문 분야로 특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업은행 기은경제연구소 양종서 연구위원은 "중형 조선소는 연구개발 기능이 취약해 설계를 외부 용역에 의존하고 있다"며 "설계 및 생산기술 등을 강화하기 위해 공동 연구개발 기구를 활성화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동 연구팀>

◆ 중앙일보=양선희(팀장) 차장, 김창우.심재우 기자

◆ 한국무역협회=김극수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조정팀장

◆ 삼성경제연구소=임영모.장성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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