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급증 … 시름 깊은 농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전남 장흥군 대덕읍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모(52)씨. 그는 국제결혼상담소를 통해 2004년 4월 베트남 여성 T씨(24)와 결혼했다. 소개비 등으로 1000만원이 들었다. 아내가 젊고 일도 잘해 "장가를 잘 갔다"는 부러움도 샀다. 그러나 김씨가 베트남 처가에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시부모와도 마찰을 빚었다. 결국 T씨는 지난해 말 이혼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대덕읍의 경우 국제 결혼한 가정이 20여 곳에 이른다. 이 중 4, 5쌍은 이미 갈라섰다. 이 마을 임재운(55) 이장은 "특히 아이가 없는 가정의 경우 언제 이혼할지 몰라 조마조마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국제결혼이 많아지면서 그만큼 국제이혼도 급증하고 있다.

15일 대법원이 국제 결혼 및 이혼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배우자와 이혼한 경우는 지난해 6187건이었다. 2003년 2784건에서 해마다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전체 이혼에서 국제이혼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3년 1.6%에서 지난해엔 4.9%로 높아졌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국제결혼이 3만9071건으로 2005년(4만3815건)에 비해 줄었는데도 국제이혼은 오히려 크게 늘었다.

◆ 위장 결혼과 남편 폭력 등이 문제=충남 청양에서 농사를 짓는 김모(39)씨는 2005년 4월 필리핀 여성 P씨(31)와 결혼했다. 하지만 부인은 결혼 6개월 만에 외출이 잦아지더니 지난해 2월 가출했다.

김씨는 결국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아내가 필리핀에서 유흥업소 종사자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며 "처음부터 나와 결혼생활을 지속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반대로 한국 남편의 폭력과 부당한 대우를 못 견뎌 이혼하는 경우도 많았다. 중국 여성 이모(42)씨는 2004년 결혼한 한국인 김모(47)씨와 지난해 이혼했다. 직장이 있다던 남편 김씨는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걸핏하면 손찌검했기 때문이다. 국제이혼 전문인 손정미 변호사는 "외국인 아내가 가출하는 사례 중엔 처음부터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한 위장 결혼을 한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한국인 남편의 폭행과 무시로 인한 것도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손 변호사는 "국제이혼을 줄이려면 사기성이 짙은 결혼중개업에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돈을 주고 부인을 산다'는 일부 한국 남성들의 국제 결혼관도 문제"라는 것이 손 변호사의 지적이다.

◆ 농촌지역에서 더욱 심각=전라남도의 경우 지난해 전체 혼인건수 중 국제결혼의 비중이 22%에 달했다. 4쌍 중 1쌍꼴로 외국인 배우자와 결혼한 셈이다. 하지만 농촌 지역은 국제이혼 비율 역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중국과 베트남.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 여성들과 결혼했다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농촌 지역은 외국인 아내와 이혼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에 비해 서울은 1859건의 국제 이혼 중 외국인 남편과의 이혼(946건)이 외국인 아내와의 이혼(913건)보다 많았다.

정철근·천창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