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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타결 이후 '업그레이드 빅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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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대 최항순(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말 중국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의 와이가오차오(外高橋) 조선소를 방문한 순간 눈을 의심했다. 17만t급 벌크선 두 척을 한 도크에서 건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상급 건조기술을 가진 조선소가 아니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최 교수는 "한국과 중국의 조선산업 격차를 7년쯤으로 계산했는데, 막상 가 보니 중국의 추격 속도가 훨씬 빨라 어지러울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일본 반도체 업체인 엘피다와 대만 업체인 파워칩은 합작으로 대만 타이중(臺中) 근교에 D램 공장을 건설 중이다. 5년 뒤 완공을 목표로 두 회사가 1조6000억 엔(약 13조원)을 쏟아붓고 있다. 이 공장이 완공되면 기존 시설을 포함해 300㎜ 웨이퍼 기준으로 월 39만 장을 생산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삼성전자의 현재 생산능력을 넘어서는 물량이다. 프랭크 후앙 파워칩 회장은 최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과 일본의 공조로 '타도 삼성' 기반을 마련했다"고 큰소리쳤다.

조선과 메모리반도체는 세계 1위를 달리는 한국의 대표 산업이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이 쫓아오고, 반도체는 일본이 대만.중국 등과 연대해 한국을 공략할 '삼각 편대'를 짜고 있다. 다른 주력산업 역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3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실적에는 한국 주력산업의 고민이 담겨 있다. 주력제품인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영업이익이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삼성전자의 사례는 숨가쁜 글로벌 경쟁에서 잠깐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샌드위치 코리아' 신세에서 벗어날 토대를 하나 마련했다. 그러나 이희범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한.미 FTA를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로 만들 관건은 결국 산업 경쟁력에 달려 있다"며 낙관론을 경계했다.

중앙일보는 한국무역협회.삼성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현 단계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점검하고, 경쟁력을 높일 대안을 살펴봤다. 경쟁력 실태를 분석한 결과 조선.반도체.디스플레이 패널 등은 아직 파란불이다. 앞으로 3~5년 동안은 세계 1위를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휴대전화.일부 디지털 기기 등은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 황색신호등으로 분류됐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파란불이 되거나, 빨간불이 될 수도 있다. 석유화학은 당장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으로, 컴퓨터와 백색가전 등은 이미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으로 진단됐다.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이다.

경쟁력을 높이거나 되살릴 대안은 뭘까. 본지와 공동작업을 한 무역협회.삼성경제연구소의 전문가들은 업종별로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반도체와 조선은 '한국발 신기술'로 불릴 수 있는 첨단기술을 더욱 보강해야 한다. 지난달 삼성전자가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한 '플렉스 원낸드(모바일용 퓨전 반도체)' 같은 제품을 속속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의 경우 후발국이 따라올 수 없도록 해양플랜트.크루즈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전환해 신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자동차 산업은 브랜드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 하이브리드 카 등 친환경 자동차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환경이 특징인 휴대전화.디지털 기기 등은 시장보다 빨리 변화를 추구해 업종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 중국은 물론 산유국인 중동 국가들이 설비 확장에 나선 범용 석유화학의 경우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은 "한국 산업의 체질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선 한국 기업의 장점인 스피드를 최대한 살려 새 시장과 제품을 먼저 개척하고 발굴해야 한다"며 "한.미 FTA 체결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생산 의존을 줄이고, 경쟁력 있는 생산기반을 다시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5대 주력산업(빅5)=조선.반도체.전자.자동차.석유화학 등. 지난해 한국 수출액의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846억 달러 흑자로 지난해 총무역수지(160억 달러 흑자)의 다섯 배를 넘은 효자 산업군이다.

특별취재팀

<공동 연구팀>

◆ 중앙일보=양선희(팀장) 차장, 김창우.심재우 기자

◆ 한국무역협회=김극수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조정팀장

◆ 삼성경제연구소=임영모.장성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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