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없는 선거용 선심정책/김수길 기동취재반(총선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선거가 정책대결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또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해서는 안되며,정경이 분리되어야하듯 행정이 선거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누구나 입에 올리는 일이다.
그런데 막상 선거 유세장에서는 치열한 정책대결을 접하기가 쉽지 않고 정작 행정부처에서는 선심성정책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번 총선을 취재하면서 각 당이나 후보들의 정책대안에 한번 제대로 초점을 맞추려해도 마치 도수가 맞지 않은 안경을 쓴 것처럼 어떤 실체가 잘 잡히지 않는 것이 바로 그같은 정책부재·정책남용현상 때문이다.
행정부 전체가 여당의 「정책두뇌」 노릇을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현실에서 여야의 정책공약을 곧이 곧대로 비교하자는 것은 벌써 출발부터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다. 실제로 여당이 내놓았던 이번 총선 공약은 잘 정제된 것이고 「몇년간 총연장 몇㎞」하는 식의 구체적인 수치까지 잘 뒷받침되어있는 것이었지만 사실 정부의 7차5개년계획의 복사판이었다. 이런 마당에 야당의 공약만이 예산의 뒷받침을 고려하지 않은채 짜여졌다고 비난하는 것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후보 개개인들이 맞붙은 선거유세장에서는 또다른 형평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전국에서 가장 수준이 높을 것이라는 어느 선거구 유세장에서 대부분의 후보들은 과연 음미해볼만한 정책제시를 섞어가며 지지를 호소한 반면 어느 후보는 실제 「알맹이」없는 유세로 일관,이들의 정책대결에 초점을 맞추려는 취재기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같은 비중으로 각 후보를 취급해야 한다는 원칙때문에 다시 각 후보들에게 질문지를 보내 서면답변을 통한 정책제시를 들으려 했으나 무슨 까닭인지 유독 「알맹이」없던 후보측만 답변이 늦는 바람에 하마터면 한 후보만 「무응답」으로 처리해야 할 상황까지 몰리기도 했다.
우여곡절끝에 각 후보는 나란히 형평에 맞춰 기사화 되었지만 이런 경우까지 꼭 형평의 모양새를 갖추어야 할 것인지는 지금도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런게 결국 우리 선거의 총체적인 수준이 아닌가 싶은 것이 가장 씁쓸한 구석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