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정의를 겨루는 대회 우승자는 ? 교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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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컨닝, 교활함의 매혹
돈 허조그 지음,
이경식 옮김, 황소자리
408쪽, 2만3000원

교활의 사전적 정의는 '간사하고 꾀가 많음'이다. 그런데 영어의 'cunning(교활함)'은 지식(knowledge)과 관련이 있다. 안다는 뜻의 불규칙 동사 'can'에서 비롯되어, 16세기 후반 속임수란 뜻으로 쓰이기 전까지 '솜씨.기술.지식'이란 의미였다 한다. 책은 고대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20세기 후반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까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 컨닝의 역사. 유형과 대응법 등을 파헤친다.

오디세우스는 '위대한 교활함'의 대명서로 꼽힌다. 트로이 전쟁 후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10년 동안 바다를 떠돌면서 온갖 역경을 만나지만 교묘한 술수로 이를 벗어나 결국 귀향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엔 교활함의 의미가 모호하지만 정작 오디세우스의 교활함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않는 데 있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 꼭 필요한 명궁 필록테테스를 합류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오디세우스는 "스스로 야비하다고 생각하지 않소?"란 질문을 받는다. 그는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무슨 상관이냐"며 "어떤 것을 손에 넣으려 할 때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소"라고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교활한 이는 필요하면 어떤 가면이라도 쓸 수 있다. 속임수가 통하려면 먼저 신뢰관계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도덕적 인간의 역할도 가능하다. 오디세우스는 "내가 무엇을 하든 내가 원하는 것은 이기는 것"이라며 "정의와 선함을 겨루는 대회가 열린다면 우승자는 바로 내가 될 것"이라 큰 소리치는 것이 그 예다. 심지어 또 다른 사악함의 가면을 쓰기도 한다. 영국의 한 화폐위조범은 포르노물을 제작하는 것처럼 작업장을 위장했다. 적발될 경우 가벼운 벌을 받겠다는 속셈이었다.

책에 실린 사례를 읽다 보면 인간의 교활함의 끝은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단 읽기 전에 두 가지 유념할 사항이 있다. 법률과 정치철학을 전공한 교수가 쓴데다 우리에게 낯선 사례가 많아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친절한 주석을 곳곳에 붙였는데도 그렇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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