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러버 공격에 선배들 "당혹"|탁구 최강전 4강 진출-고교생 유망주 유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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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국에 덩야핑 (등아평·세계 1위)과 천즈허 (진자하·세계 5위)가 있다면 홍콩엔 차이포와 (세계 13위)가 있다. 홍콩에 차이포와가 있다면 일본엔 야마시타 후미요 (세계 30위)가 존재한다. 세계 여자 탁구를 주름잡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전진 이질러버 공격수 4인방」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중국과 함께 세계 무대를 양분하고 있는 한국 여자 탁구가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전진 이질러버 공격수는 누굴까.
귀여운 생김새와 아기자기한 플레이로 곧잘 「예쁜 탁구」라고도 불리는 정지영 (대우증권)을 입에 올렸다가는 이내 자신이 없어지고 만다.
상서여상시절 양영자 (당시 제일모직)와 현정화 (한국화장품)를 연파, 탁구계의 이목을 한몸에 집중시켰으면서도 실업팀간의 스카우트 분쟁에 휘말린 이후 부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여자 탁구는 이제 이런 고민을 한꺼풀 벗게 됐다. 속쌍꺼풀진 눈매가 범상치 않은 정말 「무서운 아이」 유지혜 (16·부산선화여상 2년)가 나타난 까닭이다..
1m64cm·55kg의 다부진 몸매에 평면고무러버와 소프트 페인트이질러버를 번갈아 사용, 상대를 당혹케 하며 온갖 백구의 조화를 엮어내는 유지혜의 장기는 남자 못지 않은 강한 힘.
부산성지국교 4년 시절 6학년 오빠들과 팔씨름을 해 이기는 뚝심을 보고 놀란 체육 선생님이 탁구를 권유, 라겟과 인연을 맺게된 입문 동기 자체가 재미있다..
이같은 타고난 힘에 탁구 명문인 부산 선화여중에 들어가기 위해 국민학교를 세 번씩 (성지→동항→동광국교)이나 옮겨다닐 정도로 악착을 떤 열정이 결합, 유는 중학 시절 각종 대회 우승의 단골 손님으로 부상, 순풍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선화여상 진학으로보다 성인 탁구에 가까워진 지난해엔 제29회 학생 종별 선수권 대회에서 개인 단식 준우승을 차지했을뿐 중학 시절 그 흔한 우승 한번 못하며 슬럼프에 빠져 국민학교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경기장에 나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아버지 유동길 (44·사업)씨의 애간장을 태웠다.
그러나 최근 러버 뒷면을 보다 반발력이 큰 소프트 페인트 러버로 바꾸고 난 뒤부터는 타구의 스피드가 배가되면서 저절로 힘이 솟아올랐다. 지난달엔 오랜 전통의 제55회 서일본 탁구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 중국과 일본의 강호들을 차례로 깨고 단·복식 우승을 석권,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뒤 곧바로 한국 남녀 탁구의 최고봉을 가리는 올해의 탁구 최강전 개인 단식에 출전, 전 국가대표인 권미숙 (제일모직)을 꺾고 최강전 사상 고교 선수로서는 다섯번째로 4강 고지를 밟는 성적을 일궈냈다.
유의 돌풍은 비록 박경애 (대한항공)의 전진속공에 차단됐지만 경기를 지켜본 탁구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유가 장래 한국 여자 탁구를 이끌어갈 동량이라는 점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현재까지의 기술 내용이나, 성적보다도 커다란 두 눈에서 뿜어나는 광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
박도천 (한일은 감독) 월간 탁구 발행인은 『마치 김이 서리는 듯한 강렬한 눈빛은 덩야핑이나 현정화 같은 무서운 승부사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데 유지혜가 바로 이런 눈빛을 갖고 있다』면서 국제 경험의 축적과 부단한 목표 설정에 따른 훈련이 착실히 진행될 경우 대스타로 발돋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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