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범죄 시대를 사는 지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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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주차장에서 부녀자를 납치해 금품을 빼앗으려 한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무역센터 현대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교수부인이 납치됐던 사건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올들어서도 지난달 19일 서울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또다른 교수부인이 납치됐던데 이어 4일 또다시 서울 종묘 지하주차장에서 여사장이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뒤의 두 사건들은 분명히 모방범죄로의 안전대책이 강화되지 않으면 제 4,제5의 범행도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주차장에서 부녀자 납치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것은 손수 운전하는 부녀자의 경우는 대개 생활이 넉넉한 경우가 많은데다 주차장에는 인적이 드물고 피해자의 차량을 이용해 도주하기도 쉽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녀구별없이 고액의 현금·수표 등을 지니고 다니고 부유층 여성들은 과시벽 때문인지 일상적인 나들이때도 값비싼 귀금속으로 화려한 치장을 하는 경우가 많아 범죄의 좋은 대상이 된다.
세건의 잇따른 주차장범죄를 통해 우리들은 몇가지 일깨움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주차장에서의 범죄예방대책이 마련되어야 하겠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주차장들은 주차관리에만 신경을 썼지,범죄발생시에 대해서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종묘주차장만해도 층마다 3∼4대의 폐쇄회로TV까지 갖추어져 있었으나 주로 화재 등의 감시를 위한 것일뿐 범죄예방에는 별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시설과 사람에 의한 이중적인 예방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범죄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으레 경찰의 소홀과 무능에 돌려 왔으나 따지고 보면 경찰만이 책임을 질 일이 아니다. 물론 경찰로서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해야 하겠지만 범죄를 예방하려면 사회 각부문과 각개인들도 그를 위한 그 나름대로의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일련의 사건들로 일러주고 있다.
거액의 현금이나 수표 등을 지니고 다니는 습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신용카드보급이 확대돼 있어 굳이 거액의 현금이나 수표를 지니고 다녀야 할 필요성이 적어졌다. 여자들의 화려한 치장도 자제되어야 한다. 서구의 나라들에서도 파티 등에서는 호화로운 옷과 귀금속 치장을 하지만 일상적인 나들이때는 넉넉한 집안의 부녀자들도 간편한 평상적 차림에 실용적인 액세서리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다.
거액의 현금이나 수표소지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게 신용카드등 신용거래제도를 더 편리하게 하고 사용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수단의 강화도 요구되나 우리들의 의식과 생활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또 가급적이면 자가용승용차 사용을 줄이는 것도 이런 유형의 범죄에 노출되지 않는 한 방법일 수 있겠다.
아울러 요즘엔 납치뒤 은행통장에서 인출해 가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만큼 은행측에서 본인이 예금을 직접 인출하지 않는 경우에는 좀더 세심히 확인을 하고 증거나 단서가 될만한 더 많은 기록을 남기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고객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다.
돈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세태다. 이런 세태속에서 살아가자면 개인들도 안전을 위한 지혜를 체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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