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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73주년의 탑골공원(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3·1절 73주년을 맞은 서울 탑골공원.
총선이 다가와선지 벤치마다 삼삼오오 모여앉은 노인들의 시국토론이 점점 열기를 띠고 있었다.
『그동안 열번도 넘게 투표를 해왔지만 역시 구관이 명관이더라구.』
『허참,그러니까 요즘 돈 천원을 들고 나와도 어디가서 변변한 점심 한그릇 먹기 힘들어진거요. 이번엔 새 인물을 뽑아야하는구먼.』
기념탑주변에는 이날 하룻동안 3·1운동 기념사업회,민족운동단체연합회,불교청년회 등에서 잇따라 기념행사를 가진 터라 화환과 현수막이 즐비했다.
『요 며칠사이에는 가뭄에 소나기 오듯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곳을 잊고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지요.』
공원출입 5년째라는 한 할아버지(71)는 정신대다 뭐다 떠들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선 이곳부터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한다고 지저분한 주위환경을 한탄했다.
공원 한구석 만해동산 아래에선 한용운선생의 손녀라고 주장하며 벌써 3년째 이맘때마다 이곳을 찾아왔다는 한귀례씨(69·전남 장흥)가 한복차림으로 『왜곡되어가는 우리 역사를 바로잡자』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한씨는 『친일파들이 우국지사로 변신해 독립운동가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있다』며 모여든 시민들을 상대로 『이제 제2의 광복선언을 해야 할때』라고 목청을 높였다.
같은 시각,공원 정문앞에는 「해직교사 결의대회」를 마친 해직교사·가족 6백여명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평화행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학교로 가고 싶습니다.』
여기저기서 펼쳐든 현수막사이로 어린 꼬마를 무동태운 아버지,서로 손을 꼭 잡은 부부의 모습이 눈에 띄었고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외치는 구호와 차도를 막아선 경찰들의 호각소리가 사뭇 대조적으로 보였다.
「해방」이 「광복」이 되고 「독립」으로 바뀌어간 지난 40여년간의 세월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10층석탑앞에 누군가가 켜놓은 촛불을 바라보며 3·1절 오후의 풍경이 유달리 어수선하게 느껴지기만 했다.<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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