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을 선물하는 이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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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곤륜옥(誰斷崑崙玉) 누가 곤륜산 옥을 베어내
재성직녀소(裁成織女梳) 직녀의 머리 빗 만들었나
견우일거후(牽牛一去後) 견우 한번 떠나간 뒤
수척벽공허(愁擲碧空虛) 수심에 젖어 푸른 허공에 던져버렸소

곱게 머리를 빗질해 단장하는 까닭은 님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 여류시인 황진이는 반달을 “직녀가 견우와 이별한 뒤 하늘에 던져버린 그녀의 얼레빗”이라고 읊었다. 견우를 위해 일년에 한번 칠석날 빗던 얼레빗을 허공에 던져버린 것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의 빗(梳)은 반달모양으로 생겨서 월소(月梳)라고도 부르는 전통빗이다. 칠석이 지나서 견우와 헤어졌으니 머리를 손질한다손 치더라도 보아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빗은 반달 모양이다. 반달은 보름이면 만월이 된다. 그대 없는 나는 반쪽 달님일 뿐 완전을 이룰 수 없다. ‘영반월’(詠半月-반달을 노래하다)이란 한시는 이런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본래 머리카락은 여성의 정조를, 남성에겐 지조를 상징했다. 중매쟁이가 얻어 온 규수감의 머리카락의 굵기와 빛깔로 건강상태를 확인했으며, 처녀 총각이 눈이 맞으면 처녀가 머리카락 세 올을 뽑아 주었는데 정조를 바치겠다는 표시였다. 우리 결혼 풍습에도 청혼 때 남자 집에서 사주함에 빗을 넣어 보내는데, 신부감이 이 빗을 받으면 결혼을 승낙하는 허혼의 의미가 있다. 여자가 받은 그 빗으로 머리를 정갈하게 하고 신랑을 기다린다는 은근한 뜻이 담겨져 있다.

‘증보산림경제’에 수록된 글을 보면 노랑머리나 붉은 머리의 여인은 자식이 없을 것이라고 해서 혼사도 어려웠다. 이와 반대로 아들 잘 낳는 관상인 여상법(女相法)의 조건에 의하면 전통적인 미인은 흑단같이 검은 색깔에 윤기가 흘러야 했다. 물론 이런 관상법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며 결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소중하게 여겼음은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 하나가 소 네 마리 당기는 힘보다 더 강하다”는 덴마크 속담이 있다. 이처럼 빗과 머리카락, 그리고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요즘엔 머리카락이 부족해지는 탈모의 영향으로 모발보다는 오히려 모발건강의 기본이 되는 두피의 건강을 따진다. 빗 역시 단순히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용도가 아니라 두피와 피부를 마사지하는 용도로 쓰이는 두피관리 빗까지 등장했다. 그래서 한 개에 수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 하는 명품빗이 생일선물, 여자친구선물, 기념일선물, 개업선물 등으로 인기다.

‘기회’가 있을 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면 조심스럽게 전통빗을 건네보라. 물론 받는 이가 그 까닭을 알아야 선물의 의미가 새롭게 되살아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조인스닷컴(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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