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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해부] “노사모 神話 우리가 해낸다"

중앙일보

입력

▶한나라당 양대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팬클럽이 대통령선거를 300일 앞둔 지난 2월22일 국회에서 ‘페어플레이’를 선언한 뒤 악수하고 있다.

월간중앙팬클럽 정치가 후끈거린다. 그 중 ‘MB연대(이명박 전 시장 팬클럽)’와 ‘박사모(박근혜 전 대표 팬클럽)’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양쪽은 마지막 순간까지 페어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까? 아니면 헐뜯기가 불가피할까?


■ MB연대, 젊은 직장인 위주…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모임 강세
■ 박사모, 해외지부 포함 5만 명 열성 팬 모임…주부·자영업자 주축

2007년 2월16일 21시40분.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박사모)’은 ‘회장 나라사랑’ 명의로 초긴급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총동원령을 발동했다. 회원 5만여 명에게 ‘박사모 총동원령 발동’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발송한 것.

박사모는 이메일에서 김유찬 씨가 제기한 주장을 모두 열거한 뒤 “이런 후안무치하고 패륜적 후보가 사퇴할 때까지 투쟁할 것을 공표한다”며 “1차 투쟁에 한 분도 빠짐없이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이 이메일에는 “(김씨의 주장에 대한) 해당 기사가 (인터넷상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모든 기사를 각종 사이트에 퍼날라 전 국민이 이러한 진실을 알 때까지 온라인으로 투쟁한다”는 등의 구체적 지침까지 들어있었다.

2007대선을 앞두고 팬클럽 정치가 후끈거린다. 본보기는 2002대선에서 무명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다.

2000년 6월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으로 탄생한 노사모는 불과 300명 남짓한 동호회였지만 2002년 대선에서 ‘노풍’을 일으키며 무명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탄핵정국 때는 회원이 10만 명으로 늘어 여론을 좌우하는 ‘무적의 부대’로 성장했다. 정치가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노사모’의 기적이다.

2007대선을 300일 앞두고 대선 주자들의 행보가 빨라지는 만큼 ‘제2의 노사모의 기적’을 목표로 하는 정치인 팬클럽들의 활동도 달아오르고 있다. 과거 노사모가 대선을 ‘정치인들만의 놀음’에서 ‘내가 즐기는 축제’로 변화시키며 대선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았던 것과 달리 2007년의 정치인 팬클럽의 목표는 단 하나,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것이다.

그만큼 조직도 훨씬 단단하고, 전략도 치밀하다. 진영의 대립각이 더 예리해지기도 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하는 ‘박사모’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지지하는 ‘MB팬클럽연대(이하 MB연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지율에서 선두 1, 2위를 다투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터다.

두 팬클럽이 지난달 22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상호 비방 금지 ‘페어플레이’를 선언하는 것으로 끝을 맺기는 했지만 6월 경선을 앞두고 두 팬클럽이 부닥칠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경선을 통과해야 본선인 대선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어디나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상대적으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앞서는 만큼 MB연대는 아직 느긋한 반면, 이 전 시장의 뒤를 바싹 쫓고 있는 박사모 측은 안달이 나 있는 형국이다. 박사모의 ‘총동원령’도 이 같은 기싸움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박사모는 대선 후보 팬클럽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광고감독 출신으로 회장을 맡고 있는 정광용(49) 씨가 2004년 3월30일 만든 인터넷 카페가 출발점이다. 정광용 씨는 “탄핵정국 때 인터넷에서 노사모와 설전을 벌이다 박근혜 지지자들도 이런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 포털 다음에 카페를 만든 것이 여기까지 온 계기가 됐다”고 배경을 설명한다.

탄핵정국 속에서 탄생한 ‘박사모’

4·15총선 전까지 회원 100여 명에 불과했던 박사모는 정씨가 자기 집 텔레비전을 천막당사로 가져가 응원하는 모습이 보도되면서 1주일 만에 무려 1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당시 운영자 7명이 밤낮으로 ‘등업(다음 카페는 회원이 가입을 신청하면 운영자가 등급을 올려줘야 카페 회원이 된다)’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미처 등업을 못해줘 나간 회원이 30%쯤 됐죠.”

박사모가 박근혜 전 대표의 최초의 팬클럽은 아니다. 연륜으로 치면 현재 회원 1만여 명 정도 되는 ‘근혜사랑’(대표 신현철)이 앞선다. 그러나 4·15총선 개표방송을 계기로 박사모는 가뿐하게 근혜사랑을 추월해 현재 회원 5만 명으로 명실상부한 박 전 대표의 대표 팬클럽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사모의 하루 평균 방문자는 8,000여 명. 이슈가 있는 날은 1만5,000여 명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홈페이지에 글을 쓰거나 월 회비 3,000원을 내는 책임회원은 1만 명, 한 달에 한 번 이상 접속하는 회원은 3만 명 정도다.

이명박 전 시장의 팬클럽 연대인 ‘MB연대’는 연륜은 짧지만 최근 무섭게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이 전 서울시장의 재임기간 동안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팬클럽이 지난해 6월 이 전 시장의 퇴임 축하행사장에서 만나 의기투합해 지난해 10월13일 공식 출범했다. 법무법인 비전인터내셔널 대표변호사인 박명환(37)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2004년 4·15총선 당시 한나라당 천막당사 앞에서 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박사모’ 회원들. 이날 이들의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개표방송 전까지 회원 100여 명의 소규모 팬카페였던 박사모는 불과 1주일 만에 회원이 1만여 명으로 늘었다.

모태가 된 팬클럽은 ‘송법회(이명박 시장을 지지하는 변호사 모임)’ ‘나라사랑 이명박’ ‘이 시장을 지지하는 모임(이지모)’ ‘MB와우리’ ‘MB프렌즈’ ‘MB싸이월드 미니홈피 1촌’ 등 6개. 백두원 MB연대 사무국장은 “연대를 구성하게 된 것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 시장님께서 4년 동안 너무 열심히 수고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자연스럽게 의견이 모이게 됐다”고 말한다.

작게는 100여 명, 많게는 1,4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던 팬클럽의 연합체로 시작한 만큼 MB연대는 결성 당시부터 회원 1만 명을 가뿐히 넘겨 현재는 4만3,000여 명에 달한다. 연대한 팬클럽도 5개월 만에 22개로 늘었다. MB연대는 이 같은 세 확장에 발맞춰 지난 3월 초 전국 17개 지부의 대표와 운영자를 선임하는 등 조직 정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백 사무국장은 “전국에 흩어져 있던 MB 지지자들이 MB연대가 결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결집하고 있다”며 “MB연대에 들어오겠다는 문의전화가 많이 오지만 신중을 기해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MB를 지지하는 뜻은 고맙지만 현역 군인 혹은 공무원 모임 등 선거법에 저촉될 만한 모임은 정중하게 사양하고 있다는 말이다.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세를 늘릴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개인회원은 누구든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백 사무국장은 또 “흔히 MB연대에는 전문직 종사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것은 오해”라고 말한다. 대표의 직업이 변호사일 뿐, 실제 회원은 대학생부터 직장인, 자영업자까지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는 “회원들의 직업군을 조사해본 적은 없지만 전문직 비율이 특별히 높은 것 같지는 않다”며 “전체 회원의 2~3%도 안 될 것 같다”고 설명한다. 연령대로 보면 20대 대학생부터 79세 노익장까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두터운 층은 30대와 40대. 활동 또한 이들이 가장 활발하다.

22개 팬클럽 연대…30~40대 직장인이 주축

MB연대의 든든한 힘은 30여 명에 달하는 고문단과 자문위원. 손창록 전 그랜드백화점 총괄사장, 김형문 선문대 교양학부 교수, 정상대 예비역 장군 등이 참여하고 있다. 실무진으로는 백두원 사무국장을 비롯해 이청연 기획홍보국장, 정기태 대외협력국장 등 이른바 ‘정·이·백 트리오’가 주축이 돼서 이끌고 있다.

박사모 회원 가운데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짙게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박사모 여성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수아(47) 씨도 그 중 한 명. 두메산골에서 자라 새마을운동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그는 어려서부터 박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 그러던 차에 2004년 8월 신문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하는 인터넷 모임이 있다는 기사를 읽고 주저 없이 가입했다.

박사모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김씨에게 박 전 대표의 이미지는 ‘동화 속 공주님’이었다. 카페에 가입한 것도 ‘공주님’을 가까이에서 접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활동할수록 인간 박근혜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커지게 됐다.

김씨는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이지만, 여성위원장을 맡은 이후 요즘 그의 일과는 박 전 대표의 일정을 중심으로 짜인다. 박 전 대표가 참석하는 행사는 낮이든 밤이든 빠짐없이 참석한다.

“얼마 전에는 박 전 대표께서 출국하시는 것을 배웅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상계동 집에서 인천공항까지 갔습니다. 그 먼 길을 박 전 대표 얼굴 한번 보려고 갔죠. 누가 시키면 그렇게 못할 거예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죠.”

그는 또 “어떤 스타에 대해서도 이렇게는 못할 것”이라며 “우리가 조국을 바로 세운다는 자부심과 조국을 바로 세우기 위한 적임자가 바로 박 전 대표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씨 외에도 박사모는 열성 팬이 많은 팬클럽으로 유명하다. 박 전 대표가 참석하는 행사에는 반드시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박 대표가 대구 행사에 참석하면 대구 박사모가, 광주 행사에 참석하면 광주 박사모가 뜨는 식이다.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평균 100명 이상, 지방 행사에도 최소 20~30명의 박사모 회원이 어김없이 얼굴을 내민다. 참석자는 대부분이 50~60대의 자영업자. 열성 회원의 경우 월차를 내고 참석하기도 한다.

순수한 인터넷 카페로 출발한 박사모의 활동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사무실조차 없다. 출범 당시 정 회장의 개인사무실을 사용했지만 이마저 1년 전에 없앴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비용 때문. 5만 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박사모지만 월 3,000원의 회비를 내는 회원은 1,000명이 채 안 된다. 반면 월세와 관리비, 인터넷 비용 등 한 달 사무실 유지비용이 200만 원이 넘게 들었다.

정 회장은 “회의를 비롯한 박사모의 모든 활동은 온라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사무실이 없어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며 “사무실 유지 비용을 줄여 그 돈을 연말 불우이웃돕기 등에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팬클럽은 일정 수 이상의 회원을 확보한 이후 포털 사이트에서 독립해 독자적인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것이일반적이다. 그러나 박사모는 5만여 명의 거대한 팬클럽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계속 포털 사이트 다음의 카페 형태로 남아있다. 박사모 회칙에도 “독립 서버는 개설하지 않는다”고 못박아 두었다.

문제는 다음 측이 회원이 카페에 가입해도 카페 운영진에게 개인정보를 넘겨주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박사모는 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 등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박사모 측이 회원가입시 다음으로부터 넘겨받는 정보는 닉네임과 나이, 거주지 동명이 전부다. 홈쇼핑 업체가 가입자들에게 요구하는 정보보다 훨씬 빈약한 정보만 가지고 있는 셈이다.

단적인 예로 박사모 측은 “MB연대 측에는 전문직이, 박사모에는 자영업자가 많다고 하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에 대해 “회원 직업군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박사모가 다음의 카페 형태로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 회장은 그 이유를 한마디로 “공짜잖아요”라고 답한다. 비용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보안상의 이유를 들었다.

“홈페이지는 해커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어요. 다음에 있으면 그런 부분을 다음에서 해결해 줍니다. 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편리하고요. 포털 사이트에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독자적인 홈페이지를 구축해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 또 자체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측을 보면 회원 수나 방문자 수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발표하는 회원 수와 방문자 수, 댓글 수는 모두 다음에서 통계를 내는 것입니다. 때문에 일절 거품이 끼어있지 않고, 시시비비에 걸릴 일도 없죠.”

다음 인터넷 카페를 기반으로 하는 박사모는 다음이 제공하는 기능에 따라 회원을 크게 손님-준회원-정회원-우수(책임)회원-특별회원으로 구분하며, 회원 등급에 따라 게시판에 대한 접근이 차별적으로 허용된다. 박사모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다음 카페를 방문하면 일단 ‘손님’의 신분이다. 다음 카페에 가입하면 우선 준회원이 된다.

여기까지는 운영진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정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등업’ 신청을 해 운영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박사모 측은 포르노 업자 등 명백히 상업적 목적으로 등업 요청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부하는 일은 없다. 정회원이 되면 카페의 거의 모든 게시판에서 읽고 쓰기를 할 수 있다.

“박근혜는 나의 스타”

우수(책임)회원은 자발적으로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 및 공식 오프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이며, 특별회원은 지역장·지부장·위원장 등 직책을 맡은 회원이다. 특별회원은 3개월간 직무 적응 및 검증기간을 거쳐야 하는 등의 엄격한 자격요건을 두고 있다.

박사모의 일반적 의사결정은 회장단 및 부회장 3명, 조직위원장, 운영자 10명 등으로 이뤄진 운영자협의회에서 이뤄진다. 지난 2월16일 내려진 총동원령도 운영자협의회를 통해 결정된 것이다. 그러나 중요도가 높은 사안에 대해서는 지부장까지 참여하는 전국운영협의회를 통해 이뤄지며, 이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지역장까지 100여 명이 참여한 회의를 통해 이뤄진다.

흥미로운 점은 인터넷 모임답게 회의도 온라인 상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10여 명이 모이는 운영자협의회는 보통 오프라인으로 이뤄지지만 전국 단위의 전국운영협의회 등은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이들만 참여할 수 있는 게시판에 안건을 올린 뒤 댓글과 답글 형식으로 의견을 모으거나 투표를 한다.

모든 활동과 담론이 카페 게시판을 통해 이뤄지는 박사모에 비해 MB연대는 온라인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은 편이다. 이는 MB연대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박근혜의 팬이라는 이유 하나로 모인 박사모와 달리 ‘MB를 지지하는 변호사 모임’이라든지 ‘MB를 지지하는 금융인 모임’ ‘MB를 지지하는 봉사자 모임’ 등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중 MB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 온라인으로 이어간 경우가 많기 때문.

물론 ‘MB의 미니홈피 1촌 모임’ 또는 MB를 지지하는 다음 카페를 모태로 하는 ‘나라사랑 이명박’과 같이 처음부터 온라인 팬클럽으로 시작한 모임도 다수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MB연대 공식 홈페이지보다 자체 홈페이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활동이 비활성화된 대신 MB연대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에서 더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전 시장의 생일이자 대선을 치르는 12월19일을 기념해 매달 19일을 ‘엠비데이’로 정하거나 그의 공약을 공부하며 매니페스토 운동(참공약 선택하기)을 벌이는 식이다.

“MB연대의 취지는 정치인 이명박이 바빠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을 우리가 채워주자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소외된 계층을 챙기는 봉사활동이죠. 이 전 시장님의 이미지가 사실 좀 딱딱하잖아요? 일반 국민과 거리감도 있고요. 이런 부분을 우리가 나서서 없애주는 것, 국민과 이 전 시장님의 간극을 줄여주는 것이 MB연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두원 사무국장은 이런 설명과 함께 “지난 겨울 동두천지역 조손가정에 사랑의 연탄을 전달한 일과, 승가원 어린이들과 청계천 나들이를 갔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국민에게 다가가는 행사를 더 많이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2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55번째 생일을 맞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으로 찾아온 박사모 회원들이 박 전 대표에게 방탄복을 전달하고 있다.

박사모와 달리 캠프 측과 함께 움직여

박사모와 MB연대의 극명한 차이는 이들이 지지 후보 캠프와 맺고 있는 관계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박사모의 경우 캠프 측과 일절 커뮤니케이션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반면 MB연대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안에 따라 캠프 측과 조율하며 움직인다. 이는 두 팬클럽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박명환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봉사활동을 나가는데 이 전 시장님의 뜻을 물어보지는 않습니다. 그런 활동은 우리가 스스로 판단해서 하죠. 그러나 이 전 시장님의 정책이나 정치이념을 우리가 홍보활동 등을 통해 재생산해낼 때는 이 전 시장님의 본의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로 정책을 공부하기도 하고 모르는 것이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캠프 측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하죠.”

그러면서 그는 “어떤 팬클럽이든 지지하는 분의 뜻이나 노선과 반대로 움직인다면 그것은 진정한 팬클럽이라고 할 수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는 캠프 측과는 사안에 따라 전화로 상의하고, 중요한 문제는 직접 이 전 시장을 만나 의논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반면 박사모는 박 전 대표가 참석하는 행사에는 반드시 참석하지만 원거리에서 지켜볼 뿐 박 전 대표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은 없다. 박사모 측이 박근혜 대표를 지금까지 직접 만난 적은 창단 이래 단 두 번. 2004년 4·15총선이 끝난 뒤 ‘양재 시민의 숲 걷기 대회’에 참석한 박 전 대표를 만났던 것과 지난 2월2일 박 전 대표의 55세 생일날 삼성동 자택을 방문해 방탄조끼를 전달한 것이 전부다. 박 전 대표 역시 2004년 박사모 가입하며 가입 인사를 남긴 이래 지금까지 딱 세 번 박사모에 글을 올렸다.

▶지난해 여름 ‘나라사랑 이명박’ 등 이명박 전 서울시장 팬클럽 회원 90여 명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강원도 평창에서 수해복구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정광용 회장은 “그날 전달한 방탄조끼도 사실은 피습사건이 있은 직후 박사모 로스앤젤레스 지부에서 박 전 대표님께 전달해 달라고 보내온 것을 전달할 기회가 없어 가지고 있다 드린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박사모 회원들이 박 전 대표를 따로 만나는 것 자체가 회칙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한다. 그는 그 이유를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박 전 대표와 따로 만나고 또 박사모의 활동 하나하나를 캠프 측과 상의해 해나간다면 박사모 자체가 2중대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자발적인 팬카페라는 박사모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이죠.”

그는 또 캠프와 거리를 두는 이유로 “우리의 실수가 박 전 대표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캠프 측과 잦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경우 자칫 박사모의 행보로 인해 박 전 대표의 의중을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박사모와 박 전 대표 모두에게 이익보다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 밖에도 박사모 회원은 선출직에 출마하거나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 금지되며, 선출직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박사모를 탈퇴해야 한다. 설사 박사모를 탈퇴하고 선출직에 나설 경우에도 박사모는 그 사람의 낙선운동을 펼친다는 것이 회칙이다. 정 회장은 “박사모 회원은 정치와는 철저히 담을 쌓으라는 뜻”이라며 “이것이 노사모와의 결정적 차이”라고 강조한다.

후보 검증이냐, 네거티브 선거운동이냐?

박사모의 대선전략은 5만 명의 회원을 앞세워 온라인을 통해 박 전 대표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는 한편,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돼야만 하는 당위성을 최대한 널리 알린다는 것. 그 중 하나가 현재 MB연대 측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후보 검증 논란이다.

박사모 측에서는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자가 없는 깨끗한 후보가 경선을 통과해야 하며, 이를 팬클럽이 나서서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총동원령도 이 같은 맥락에서 발동했다.

김수아 여성위원장은 “총동원령은 표현이 거칠어 상대방의 기분이 상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총동원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김유찬 씨 기자회견에 대해 방송과 언론이 침묵했어요.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죠. 그래서 우리 회원들을 통해서라도 국민에게 사실을 알려야겠고 생각했죠. 박사모가 가진 최대 자원이 5만 명의 열성 회원입니다. 자기가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잖아요?”

그는 이렇게 반문을 하며 “김유찬 씨 기자회견에 대해 침묵하던 언론이 박사모의 총동원령을 기사화하면서 비로소 김유찬 씨 사건을 쓰기 시작했다”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박사모 운영자 중 한 명인 한병택(48) 씨도 “본선 승리를 위해 경선에서 철저히 검증하자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박사모가 제기한 후보 검증 논란을 언론이 팬클럽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보도하는 것에 대해 “대리전이라는 것은 누구를 대신해 싸운다는 것 아니냐”며 “박사모는 박 전 대표나 박 전 대표 캠프와 전혀 커뮤니케이션이 없다. 순수히 우리가 판단해서 행동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대리전이냐”고 반박했다.

정 회장은 “박사모는 네거티브 공방은 하지 말자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하면서도 후보 검증과 네거티브 공방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근거 없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것은 네거티브지만, 팩트(사실)를 이야기하는 것은 검증이지 네거티브 공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하자는 후보 검증은 팩트를 이야기하자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반면 MB연대 측에서는 후보 검증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네거티브 선거운동이라며 일절 대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언론이 총동원령 사태에 대해 팬클럽 간의 대리전이 펼쳐졌다고 보도했으나 MB연대 차원에서는 성명서를 내는 등의 공식적 대응은 하지 않았다. 일부 회원이 자체적으로 UCC를 만들어 올렸을 뿐이다.

그러나 박명환 대표는 “일단 박사모 측의 검증 논란에 대해 일절 대응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지만, 계속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박사모 측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할 경우 우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대선이 300일 가까이 남은 시점에서 두 클럽의 신경전은 더욱 날카로워질 조짐이다. 같은 당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고비는 12월 대선이 아니라 올 여름 경선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후보는 모두 경선 출마와 경선 결과에 대한 승복을 약속했다. 둘 중 한 명은 경선 이후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박사모나 MB연대 모두 경선 승복 여부에 대해 지지 후보가 “경선에서 패한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면서도, 경선에서 질 경우 지지 후보의 행보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지켜볼 일이다.

미니 인터뷰 1 | 정광용 박사모 회장

“우리의 스타 박근혜가 MB에게 지는 일 절대 없을 것”

정광용(49) 박사모 회장은 박사모를 만든 날짜와 시간인 2004년 3월30일 밤 10시35분을 정확히 기억한다. 이날 이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는 박사모 회장으로 나선 이후 생업인 광고감독을 때려치웠다. 처음에는 그도 자신이 만든 카페가 이렇게까지 커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만들었다는 그는 이것이 시대정신이라고 믿는다.

― 박사모를 만든 계기는?
“탄핵 역풍이 막 불던 때로, 한나라당 지지율이 7%도 안 될 때였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많아야 80석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터넷에서 종종 ‘노빠’라고 불리는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과 설전을 벌이고는 했는데, 한나라당 지지자들도 이런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카페가 ‘박사모’다.”

― 처음부터 호응이 좋았나?
“첫날은 나 혼자였다. 2004년 3월30일 자정을 넘기면서 한두 명씩 들어와 4·15총선 전까지 회원이 약 1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다음 카페 중에서도 그리 큰 카페는 아니었다. 총선 당일 한나라당 천막당사로 개표 응원을 갔다 우연히 MBC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응했다. 왜 여기까지 나왔느냐고 해서 ‘우리는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한나라당이 80석도 안 나왔을 때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대표를 흔들까봐 걱정돼 나왔다”고 답변한 것이 전국방송을 탔다. 그날 밤으로 가입 신청이 몰려들었다.”

― 본업과 팬클럽 활동의 조율은 어떻게 하나?
“생업은 당분간 접었다(웃음). 12월19일까지는 박사모 활동에만 매달릴 계획이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위원장·수석부회장 등도 모두 이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래도 바쁘다.”

― 박근혜 전 대표와는 자주 만나나?
“전혀 만나지 않는다. 박 전 대표는 물론, 박 전 대표 캠프와도 일정을 받기 위해 연락하는 것 외에는 일절 커뮤니케이션이 없다. 지금까지 3년 가까이 박사모를 이끌며 박 대표를 딱 두 번 만났다. 박 대표가 박사모에 글을 남긴 것도 가입인사를 포함해 딱 세 번이 전부다.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박 대표의 마음을 이해한다.”

― 만약 박 전 대표가 경선에서 이명박 전 시장에게 질 경우 어떻게 할 생각인가?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 박사모도 이 전 시장의 선거운동을 도울 것인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박 전 대표가 경선에서 질 경우 박 전 대표는 반드시 그 결과에 승복할 것이다. 그 분은 그런 분이다. 박 전 대표가 승복하면 당연히 박사모도 승복한다. MB를 도울지 어떨지는 박 대표의 의중을 따를 것이다.”

― 12월19일 대선 이후의 계획은 무엇인가?
“당연히 생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니 인터뷰 2 | 박명환 MB연대 대표

“술자리 모임이 MB연대로 발전…경선 결과 MB 뜻 따를 것”

MB연대 박명환(37) 대표는 중견 법률회사 ‘비전’을 이끌고 있는 소비자소송 전문 변호사다. 사법연수원 32기 수료 후 바로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그가 변호사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소비자소송’ 때문.
그는 2004년 반값에 물건을 판다며 소비자들을 현혹했던 인터넷 쇼핑몰 ‘하프플라자’ 사건을 맡아 소비자 2,600여 명을 대리해 44억 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냈다.

처음 맡은 소비자소송으로 소장만 박스로 7개에 달할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사건이었지만 인지대만 받았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소비자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돈인 변호사가 무보수 MB연대 대표를 맡은 것도 이명박 전 시장이 대통령이 되는 데 0.1%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곧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 어떻게 MB연대 대표가 됐나?
“평소 이 전 시장이 CEO 마인드를 가지고 국가를 잘 이끌 분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2~3년 전쯤 몇몇 변호사와 소주잔을 기울이다 의기투합해 ‘이명박 시장을 지지하는 변호사 모임’을 만들게 됐다. 처음에는 이 전 시장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 전 시장을 좋아하는 변호사 5명의 술자리 모임이었다. 그러다 회원이 10명 정도로 늘어나면서 우연히 이 전 시장님을 뵐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팬과 스타와의 만남이었지 이 전 시장님의 법률자문과는 전혀 관계 없는 만남이었다. 점차 뜻을 같이하는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소위 MB 팬클럽이 됐고, 또 전국적으로 MB를 지지하는 모임들이 뭉친다는 말이 있어 거기에 합류한 것이다.”

― ‘MB를 지지하는 전국 변호사 모임’의 회원은 얼마나 되나?
“지금은 전국적으로 100명 정도 된다. 그러나 MB 지지를 표명하는 변호사는 훨씬 많다. 30~50대 변호사는 대부분 MB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MB는 자주 만나나?
“MB연대 대표를 맡은 이후 이 전 시장님이 참석하는 행사에 되도록이면 참석하기 때문에 행사장에서 종종 마주친다. 또 경우에 따라 MB연대 대표로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시간을 내 찾아뵙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MB연대 대표가 된 이후의 일이고, MB연대 대표가 되기 전에는 순수하게 팬으로 있었기 때문에 이 전 시장님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다.”

― 법무법인 대표다. 변호사 업무만으로도 바쁠 텐데 MB연대 활동과 본업 사이의 조율은 어떻게 하나?
“매일 다르지만 대략 7:3 정도로 MB연대 일에 주력하고 있다. 법률회사를 개업한 지 3년밖에 안 돼 아직 경영일선에서 손을 떼기에는 굉장히 위험한 시점이다. 그래서 대표직을 맡는 것을 많이 망설였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맡았다.”

― 경선에서 진다면?
“솔직히 단 한 번도 경선에서 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질 경우 이 전 시장님의 뜻을 따를 것이다.”

― 대선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 해체되는 것인가?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운영위원회에서 정식으로 논의해본 적이 없다. MB연대의 경우 여러 팬클럽이 모인 것이기 때문에 각 팬클럽의 해체 여부는 팬클럽 단위에서 결정할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봉사단체로 남아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 박명환 대표 개인의 거취는? 주위에서 정치에 뜻이 있는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생업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나. 내 꿈은 변호사로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법률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MB연대 대표를 맡은 이후 정치에 뜻이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고 있다. 내가 봐도 제3자라면 그렇게 볼 것 같다. 그러나 정치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애국심도 있어야 하고 정치철학도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많이 부족하다.”

오효림_월간중앙 기자 [hyolim@joongang.co.kr]

<월간중앙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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