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랑 우선”… 부시 정치철학/문창극 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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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재선출마를 공식선언했다.
부시의 출마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것이어서 선언 자체가 정치적 의미를 갖지는 않으나 이날을 기점으로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본격화하는 것이다.
부시는 이날 백악관 근처의 한 중류급호텔 연회장에서 1천여명의 지지자가 참석한 가운데 『이 시간부터 나는 미 대통령후보의 한사람이 됐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며 4년을 더 일할수 있도록 밀어줄 것을 호소했다.
이 출마선언식에서 우리 눈으로 보면 매우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부시 대통령 부인 바버라여사가 먼저 등단해 남편인 부시를 소개했다.
그녀는 대통령에 출마하는 남편이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는 훌륭한 정치인 인가를 말하는 대신 그가 훌륭한 가장이었음을 제일 먼저,그리고 가장 힘주어 강조했다.
그녀는 반세기동안 같이 살아온 부시에게 변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었고 자식들을 사랑했듯이 이제는 손자들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뒤에 가서야 부시가 언제나 나라를 사랑했다는 점을 얘기했다.
바버라여사의 추대(?)를 받아 등단한 부시 대통령이 수락(?) 연설에서 강조한 부분중의 하나도 가족의 소중함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정치철학자는 바버라 부시라고 조크를 던진뒤 『이 철학자는 지금 백악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보다는 먼저 내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지혜를 가르쳐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장래가 대통령의 좁은 집무실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책을 읽어주고,책임감을 가르치고,가치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서로 사랑하도록 일깨우고,근면을 가르치는 가정에 달려있다』면서 가정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가 강조한 순서는 가족·가정·학교·교회·지역사회,그리고 제일 나중에 꼽은 것이 국가였다.
부시가 이렇게 가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보수주의 이념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민주당의 진보적 이념은 복지국가의 완성을 위해 시민생활에 대한 정부의 간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있는데 반해 공화당은 개인의 권한확대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거둬 교육·의료보험 등 개인의 생활을 간섭하기보다는 최소의 세금으로 각 개인은 자신의 책임하에 독립적인 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게 공화당측 생각이다.
따라서 가족·자립심·성실성 등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보수적 이념에 근거해 부시 대통령이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했다고 보더라도 가정에 성실함과 정치는 융화될 수 없는 상극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애국·애족·민주주의 등 추상적인 이념에 지나치게 매달려 있는 우리의 정치와는 비교가 되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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