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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니컬러스 레먼씨 『더 워싱턴』지 기고 화제|명문대 출신들로 이기·배타적 생활|생산직 등 회피 안락한 직업 선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일본인들이 미국인들의 약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자극 받아 미국인들이 자신들 사회의 문제점을 스스로 분석하는 시도들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총리는 미국의 대학생들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직업을 갖기보다는 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월스트리트 금융가만을 찾는 등 근로자 윤리가 결여돼있기 때문에 미국의 상품들이 경쟁력을 잃게 됐다는 지적을 한바 있다.
최근 월간 『더 워싱턴(The Washington)』지는 이 같은 미국사회의 구조적인 병폐를 분석한 언론인 니컬러스 레먼의 기고를 대대적으로 취급했다.
이 잡지는 워싱턴에서 발행되고있는 중립지로 정치·경제·사회와 관련한 격조 높은 비평 등을 싣고 있으며 레먼씨는 미국사회를 비평한 『약속의 땅』저자이며 지식인들을 상대로 하는 미 고급종합지 『아틀랜틱』의 기고가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에는 우등생 상류사회(Meritocratic Upper Class)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이 계층의 대두가 미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계층은 역사적으로 미국의 엘리트층 형성에 깊숙이 작용해왔던 사회·인종·문화적 배경보다는 학교성적을 중시하며, 따라서 미국의 유수한 명문사립대학교를 졸업한 우수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변호사·의사·투자전문은행가·경영고문·교수 등의 직업을 갖고 있으며 점차 언론계와 오락정보분야에도 이 계층의 사람이 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동·서부해안의 대도시 지역에 살면서 비슷한 취미와 생활패턴을 갖는다.
이 우등생그룹은 의상·승용차·주택·책·영화·음식에 뛰어난 감각과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결혼도 대학동창간에 하는 것이 보통이며 유수 사립대의 학장들은 이 선남선녀의 전문 중매쟁이 노릇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들의 숫자는 미국의 기득권 층으로 알려진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백인으로서 앵글로색슨 계 신교도들)보다 많으며 이 과거의 기득권 층과도 다른 문화를 갖고 있다.
과거 기득권 층인 WASP는 그들의 번성기 때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에 따라 열심히 벌고, 또 열심히 저축했으나 이 우등생계층은 많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저축을 하지 않고 있으며 사회에 대한 책임감 면에서도 WASP에 비해 매우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도덕적 준거 기준도 과거의 개신교 기득권 층과는 전혀 다르다.
과거의 기득권 층은 성품과 도덕적 기준을 중요시했으나 이들은 학교에서의 학업성취도와 IQ만을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받아들인다.
과거의 기득권 층의 경우 상류계층이라는 사회적 위치가 재산 등의 형태로 자식으로 이전됐으나 이 우등생그룹은 자식들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상속해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식들도 자신들과 같이 우등생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교육시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유일한 판단기준은 일류학교의 학업성적에만 국한시키기 때문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로서의 여러 주요한 덕목이 무시되어 진짜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물을 이 계층에서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의 입신코스는 대개 일정하다.
동부의 명문사립대학들인 소위 아이비리그를 나와 20대 후반에 변호사·의사·경영자문·재테크전문가 등이 되어 그때부터 이기적인 자기 생활에만 전념한다.
이 우등생들은 사회적 성공여부가 장기간 후에야 드러나는 일반 대기업이나 정부·군 등 대 조직을 피하고, 또 성공하기까지 많은 위험부담이 따르고 개인의 재능에 의존하는 직업인 세일즈맨·기업가·특정분야의 전문가·운동선수 등을 피한다.
한마디로 좋은 머리로 성적표만 잘 받아 가장 안전하고 안락한 길을 택한다.
개인능력이 가장 우수한 이 계층이 대기업·정부·창의적인 직업 등 나라의 기간이 되는 자리를 회피하게 됨으로써 미국은 자연히 쇠퇴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의 우등생들이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창의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이러한 사회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워싱턴=문창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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