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 몰린 '로또텔' 광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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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공개된 인천 송도 국제도시의 코오롱 더 프라우 오피스텔 최종 경쟁률이다. 고작 123실 모집에 36만 명이 몰렸다. 사흘 동안 들어온 청약증거금만 5조2899억원에 달했다. 로또 당첨을 연상시킨다. 부동산 시장에선 이를 '더 프라우 신드롬(증후군)'으로 부른다.

농협 부평지점은 내내 몸살을 앓았다. 50대 장년층은 낯선 인터넷뱅킹을 개설하느라 한 시간 이상 줄지어 기다렸다. 한 농협 직원은 "청약 대상이 '더 프라우'가 아니라 '프라다'라고 우긴 사람이 태반"이라고 전했다. 청약 평수도 관심 밖이었다. 저마다 경쟁률이 낮은 쪽만 찾아 주문을 냈다.

더 프라우는 예고된 신드롬이었다. 지난달 12일 모델하우스 청약 현장이 수만 명의 인파로 수라장이 됐다. 이 때문에 건설사는 온라인으로 청약 방식을 바꿨지만 이번에는 경쟁률을 폭등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정부가 이중.삼중 규제로 주택 청약 시장을 틀어막자 엉뚱하게 오피스텔 시장이 과열됐다"고 지적했다. 끊임없이 틈새시장을 찾아다니는 시중 부동자금의 본질을 외면하고 규제로만 시장 수요를 누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용면적으로 따지면 더 프라우 분양가가 그리 싸지도 않다는 전문가의 진단도 많다. 그럼에도 사상 최고 경쟁률이 나왔다. 400조원에 이르는 단기 부동자금에다 한탕을 겨냥한 '묻지마' 투기심리가 그만큼 두텁게 깔려 있는 것이다.

◆ 청약 광풍=더 프라우 청약 경쟁률은 2003년 5월의 서울 강남 도곡렉슬(4795 대 1)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상 최고다. 푸대접받던 오피스텔이 단숨에 아파트 청약 기록을 누른 것이다. 특히 10~20평형대 경쟁률은 1만 대 1에 육박했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이를 '신드롬'이라고 진단했다. 곽 교수는 "최근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이 많아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던 일반인의 조급증이 청약 광풍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왜 몰렸나=주택 청약은 온갖 규제에 묶여 있다. 그러나 오피스텔은 규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주택이 아니라 사무실이기 때문이다. 만 20세 이상이면 세 채까지 청약할 수 있다. 청약증거금만 있으면 청약이 가능하고, 당첨 후 바로 전매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인근 오피스텔보다 싼 분양가가 불을 지폈다. 더 프라우 분양가는 평균 평당 650만원대로 인근 포스코 오피스텔보다 평당 300만원 정도 쌌다. 그래서 당첨만 되면 수천만~1억원의 시세 차익이 난다는 소문이 퍼졌다.

◆ 신드롬의 함정=더 프라우의 시세 차익은 과장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용률(평수 대비 실제 사용면적)이 52%여서 실제 분양가는 기껏해야 인근 시세보다 평당 100만원 안팎 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정부가 저 난리를 만들었지, 누가 만들었겠느냐"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저마다 가족 명의까지 총동원해 청약 현장으로 달려갔다. 5일 인천시 부평 일대는 하루 종일 '로또텔' 광풍이 불었다.

정경민.조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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