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옛 선비 닮은 백로 자태에 매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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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나무 한 그루에도 여러 둥지를 틀고 이웃끼리 아기자기하게 사는 평화로움, 짝짓기 할 때 상대를 유혹하는 아름다운몸짓, 암수가 협력해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보살피는 보호본능, 이 모두가 우리 인간들의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백로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는 데만 12년을 진력해 온 박만규씨(65)는 『백로에게서 고고하고 의젓한 옛 선비가 연상된다』고 말했다.
그가 백로에 심취하게된 것은 뜻밖에도 강원도 홍천에 있던 텅스텐광구 개발사업의 영향 때문이었다. 68년부터 10년간 80만평의 광구 수십개를 뚫어봤으나 빈 주머니와 좌절감만 남았다.
그러나 광석 산출과정에서 그는 암석 박표의 단층촬영에 익숙하게 됐고 원색광석 촬영을 하면서 자연색의 아름다움을 알게됐다.
이어 박씨는 약 3년간 노을을 찍으면서 「카메라는 누르면 찍힌다」에서 「필름에 생명을 담는다」로 생각을 바꾸게될 만큼 카메라조작에 자신감을 갖게됐다.
타는 듯한 노을을 배경으로 한 백로의 평화롭고도 유려한 자태에 매료된 박씨는 81년부터 백로의 생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짝짓기·집짓기·산란·부화·먹이주기 등의 장면을 4백여장의 사진에 담은 그는 10번째 백로사진전을 지난2일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가졌다.
수명이 30년 정도라는 백로는 중대백로·중백로·왜가리·황로·쇠백로의 다섯 가지 학명으로 나누어지는데 보통 3월말께 북상을 시작해 한반도 전역에 서식하다가 10월부터 남하하는 여름철새다.
어릴 때부터 백로를 좋아했다는 박씨는 『백로가 겉보기엔 유하나 새끼보호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칠고 표독한 날짐승』이라며 『특히 그 배설물이 독해 2년동안만 둥지를 지으면 근방나무는 고사해버린다』고 설명했다.
백로의 아름다움에 빠져든 그에게 가장 혐오스러운 존재는 박제업자들이다.
그는 『서울에서 내려온 박제업자들이 수십만원대에 이르는 박제를 만들기 위해 남획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분개했다. 『이제까지 조상들의 벗이었던 백로가 우리시대에서 멸종되어선 안됩니다. 백로가 설자리를 잃으면 우리인간도 마찬가지가 됩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이번 사진전이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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