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운동가 호지 여사 訪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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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주위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한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웨덴의 생태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57)여사가 지난 8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큰 키에 긴 생머리가 가냘프게 보이는 그는 인도 서북부 히말라야 산중 4천m 고지 라다크에서 16년을 넘게 살았다. 그는 전통사회가 서구화 물결에 의해 근본부터 붕괴돼 가는 과정을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라는 책을 통해 그려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은 47개 언어로 번역됐고, 국내에는 1996년 녹색평론사에서 출간돼 지금까지 30만부 이상 팔렸다. 박사학위 논문 준비를 위해 75년 라다크를 찾았던 29세의 언어학자 호지는 라다크 문화에 매료되면서 당초의 계획을 바꿔 장기 체류를 결심했다.

"라다크인들은 거칠고 황량한 자연 조건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평화로운 자급자족 공동체 안에서 물질적으로도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라다크는 내게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줬습니다."

'다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지금까지 추진돼온 개발은 자연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행복과 건강을 파괴하고 있다. 개발을 막는 것은 자연을 회복하고 우리의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개발 정책은 시골 사람을 도시의 빈민가로 내몰고 있습니다. 도시의 일자리는 그만큼 충분치 못해 자연자원에 대한 소비는 엄청나게 증가합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더욱 가열찬 경쟁을 해야 하고, 더 많은 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데도, 생활은 더 어려워지고 각박해집니다. 라다크에도 서구적 개발붐이 일면서 처음으로 실업과 종교 분쟁이 생겼습니다."

그는 "한국은 전통사회의 친밀성에 대한 기억이 아직 남아 있어 대안 사회의 단초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금도 한해의 절반을 라다크에서 지내는 호지는 80년 '라다크 프로젝트'라는 국제적 조직을 만들어 라다크인들이 서구문화를 직접 체험하면서 자기 문화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이른바 '리얼리티 투어'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86년 스웨덴 바른생활재단으로부터 대안문화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바른생활상'을 받았다.

녹색평론사가 주관하는 '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 연사로 초청받아 이번에 방한한 호지는 10일 서강대에서 '오래된 미래와 그 이후', 11일 충남 홍성군 풀무학교 환경농업교육관에서 '세계화에서 지역화로'란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한편 녹색평론사는 이번 방한에 맞춰 '오래된 미래'를 만화로 만든 '라다크 소년 뉴욕에 가다' 를 발간했다.

글=권근영,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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