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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의여행스케치] 체코 프라하 유대인 공동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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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면

프라하 구시가의 북쪽 동네는 8세기께부터 유대인들이 격리돼 산 곳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재개발됐지만 아직도 그곳엔 '시나고그'라고 하는 그들의 교회들과 옛 무덤들이 남아 있다.

내 개인적 취향이지만, 유대인의 전통 건축에서는 별 영감을 받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들이 겪은 고통을 모르는 바 아니나 오늘날 그들의 정치적 입장에는 동조하지 못하는 영향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집단에 대한 선입견을 그 집단의 구성원에게까지 적용할 필요는 없는 것. 유럽에서 가장 볼 만하다는 유대인 지구의 공동묘지(사진)에 묻혀 있는 영혼들을 대면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공동묘지는 15세기 후반에 조성됐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원하는 곳에 무덤을 만들 자유도 없어 자신들의 거주구역 안 일정한 공간에 묘지를 조성해야 했다. 좁은 공간에 1만2000여 개의 비석이 촘촘히 세워져 있었고, 비석 아래에는 10만여 구의 시신이 매장돼 있다고 했다. 세월의 힘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의 한 때문인지 비석들은 제각각 무질서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무질서는 군집돼 있음으로 인해 새로운 차원의 질서로 강렬하게 각인됐다. 이미 사진으로 보고 간 터였지만 실제로 접하니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시끄러운 유럽 수학여행객들의 방해를 꿋꿋이 견뎌내며 한동안 비석들을 바라봤다. 문득 2005년 베를린에 세워진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머리를 스쳤다. 역시 유대인인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의 설계로 베를린 한복판 6000평이나 되는 땅에 서로 다른 크기의 콘크리트 덩어리 2700개를 펼쳐놓은 것이다. 그 비정형의 군집체가 주는 엄청난 힘에 감동했던 때가 떠올랐다.

프라하 묘지의 비석들을 보며 유대인의 옛 묘지들이 베를린 기념관의 모티브가 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곳을 빠져나와 시 외곽에 위치한 유대인 묘지 두 곳을 더 둘러 보았다. 더 나중의 무덤들이었는데 비석들은 이제 막 기울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베를린 기념관 또한 지나온 세월만큼의 시간이 또 지나면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오영욱 일러스트레이터·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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