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되어야 할 지방색 정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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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가 공천을 끝내고 총선체제를 가동함에 따라 예상되던 고질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우리는 그중에도 여야 모두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선거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현실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보도들에 의하면 민자·민주당은 거의 노골적으로 지방색을 득표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두정당은 영·호남의 상호 배타성을 돌이킬 수 없는 항수로 계산,이른바 텃밭의 「싹쓸이」(압승)를 기정사실인양 간주하는 경향이다. 이를 전제로 양진영은 호남대 비호남이니,TK대 반TK니,영남대 비영남이란 용어를 예사로 쓰고있다. 여기에 덩달아 「중부역할론」이 나오고 「전북 홀로서기」「강원도 정당론」이 일부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서슴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도대체 이런식의 선거를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선거가 공동체의 바탕을 튼튼하게 하지는 못할 망정 밑동을 허무는 짓을 예사로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민주화니 집권이니 외치고 다녀도 된단말인가. 우리 국민과 정치인은 언제까지 지역갈라먹기에 의해서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선거를 용인할 것인가.
답답함을 넘어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고도 정치의 저열한 속성과 부도덕성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우리의 어리석음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채 3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5·16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권력은 지역갈등을 조장해 정권의 획득·유지에 이용하려는 태도를 포기해본 적이 거의 없다. 오랜 분파주의 전통에 젖은 지역주민들은 이에 쉽게 호응,추종함으로써 속임수 정치가 자리잡는 환경을 조성했다.
때문에 이미 지금까지의 경험만으로도 정치에 지방색을 이용하려는 자들의 속셈과 폐해는 충분히 드러나 있다. 그 원인이 지역발전의 불균형과 연고주의 인사에서 심화됐다는 것쯤을 모르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일부에서는 지역감정이 특정지역의 패권주의로 확대되어 가는 조짐을 경계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우리의 지방색은 어느나라나 있는 향토애,또는 지역간 선의의 경쟁차원을 넘어섰다. 점점 극단적인 배타성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사태를 이렇게 악화시켰는가.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정치가,그중에도 몇번의 선거가 골을 더욱 깊게 했다는데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87년 1노 3김의 대통령선거와 88년 국회의원선거는 기억조차 하기싫은 생생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 앞에는 그 재판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뾰죽한 제어수단이 없다. 여야의 속셈이나 서두르고 있는 모습에서는 전혀 반성의 기미를 발견할 수가 없다. 오히려 악례를 되풀이 하면서도 목전의 정치적 이득만 취하면 그만이라는 뻔뻔함이 앞서있다.
이들에게 유권자의 존재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시도되는 어느 한쪽의 고립화 전략에 박수치고 놀아나야 하는 대상인가. 우리에게는 정치인들이 선동하는 극단적인 편견에 놀아나지 않는 줏대가 정녕 없단말인가.
선거에 임박해서 지역감정의 해소책을 정치인의 각성과 정치풍토 쇄신에서 찾는 것은 무기력한 당위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유권자들이 나서야 한다. 각성 못지않게 행동이 중요하다. 지역감정을 부추겨 당선 또는 대권의 교두보를 구축하려는 후보를 표로써 가려내 응징하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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