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논술한다] 쌀개방은 국익에 도움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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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기, 어느 나라든 쌀을 주식으로 삼는 나라라면 쌀시장을 개방하는 일은 큰 위험을 ③끌어안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생계가, 특히 ④식량 문제의 안정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때 식량을 가장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방법은 ⑤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외국에만 식량 공급을 의존하면 생산에서 수입되기까지의 과정 곳곳에 위험 요소가 발생할 수 있다. ⑥식량 자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나라는 다른 산업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선진국으로서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고대 지중해 세계의 지배자였던 공화정 로마도 포에니 전쟁 이후 새로 점령한 속주에서 낮은 가격의 밀이 다량으로 수입되면서, 소규모 자영농에 기반을 둔 본국의 밀농업이 붕괴해버렸다. 그 결과 로마는 본국의 주식인 밀을 전적으로 속주에서 수입하게 되었다. 이 밀 공급을 언제나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로마 황제의 중요한 책무가 될 만큼, 로마인들은 속주에서 본국으로 밀을 수입해 오는 일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주의 밀값이 움직일 때마다 로마 본국은 식량이 바닥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이곤 했다.

㈑우리나라의 농업도 포에니 전쟁 이전의 공화정 로마처럼 소규모의 자영농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규모의 기계 농업으로 쌀을 생산하는 외국의 쌀에 비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을 개방한다면 공화정 로마에서 그랬듯 소규모 자영농은 모두 몰락해 버리고 말 것이다. 그것은 곧 식량 공급을 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일이고, 국가 안보의 한 축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수출에 많이 의존하게 된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할 때, 서로의 관세 장벽을 허무는 시장 개방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공산품의 판매 시장을 넓히기 위해, 식량의 자급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제 정책에 있어서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박종원(서울 대원외고3)

총평과 첨삭

쌀시장 개방이 우리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자기 생각을 밝히라는 시사적 논제였다.

박종원 학생의 글은 대체로 논리적이고 문장 구성도 깔끔하다. 다만 표현이 어색하고 문맥이 매끄럽지 못하게 연결된 곳이 몇 군데 있다.

쟁점형 또는 선택형 논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에서는 쌀시장 개방이 유리한지 불리한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다. 그런 다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반대 견해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서술해야 한다. ①, ② 문장 간의 논리적 인과 관계는 거슬린다. 세계 각국이 세계화에 동참하는 것이 소통 환경의 개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에서 쌀시장 개방의 위험성을 논증하기 위해 '식량 자급률'을 근거로 삼은 점은 돋보인다.

③은 '끌어안는'보다는 '감수하는'으로 표현하는 게 옳다. ④는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주곡이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정도로 고치면 좋겠다. ⑤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외국에 식량 공급을 맡길 경우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상항을 예시했으면 한다. 특히 ⑥은 논리 비약이 나타난 문장이다. 차라리 식량 자급률이 왜 중요한지, 주곡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나았겠다. 생산에서 수입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부연해도 자연스럽다.

㈐는 글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으로 학생의 독서량을 짐작케 한다. 식량 자급률이 왜 중요한지 역사적 근거를 찾아 지금의 우리나라와 비교했다. 이 내용은 자연스럽게 ㈑로 이어져 쌀시장 개방의 반대 이유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욕심을 좀 더 낸다면 쌀시장 개방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문화나 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논술 시험은 학생들의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 평가하므로 사건이나 현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에서 비로소 반론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이 나타나는데, 논제에서 '반대 의견에 대해 비판하라'고 했으므로 쌀시장 개방이 유리하다는 입장의 논거를 더 구체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김영민(명덕외고 교사.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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