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꼬이는 이란의 영국군 억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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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라크에서 이란 해역을 통과해 공해로 이어지는 이라크령 샤트알아랍 수로에서 화물선 검문을 하던 영국군을 이란이 영해 침입 혐의로 잡아가는 사태로 중동 지역에 새로운 긴장이 감돌고 있다. 양국 관계가 급랭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사건은 지난달 23일 페르시아만 서부에 위치한 좁다란 샤트알아랍 수로에서 화물선에 올라 검문을 하던 영국 해군 호위함 콘월호 소속 영국 해군.해병 15명을 이란 측이 체포하면서 시작됐다. 체포 직후 이란 국영 TV는 이들이 이란 영해를 침범했다고 발표했지만 영국 정부는 이들이 이라크 영해인 샤트알아랍 수로 안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엔 이란이 이들을 체포한 장소의 것이라며 제시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좌표가 사실은 이라크 영해 안이라고 영국 측이 반박하자 이란이 다른 좌표를 내놓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뒤 1주일이 넘은 2일까지 양국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교착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1일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억류된 영국 해군과 이라크에서 미군에 체포된 5명의 이란인들을 교환하기 위한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를 부인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사태가 서방세계와 이란과의 대치 국면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지난달 27일 "잡혀간 15명의 영국 병사는 유엔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아 이라크 영해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며 "부당하고 잘못된 억류를 신속히 종결하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31일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까지 가세, "이란은 인질을 돌려보내야 하며, 결백한 그들을 나포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이란을 비난했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는 EU 외무장관들이 억류 해군에 대한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이에 이란의 대응도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영국인들은 (사태의 본질에 대해) 사과할 줄 모르는 거만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1일 테헤란에서는 200여 명의 학생이 영국 군인들의 영해 침범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던 도중 테헤란 주재 영국 대사관에 돌과 폭죽을 던지는 폭력 사태를 연출했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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