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창의적 사고 가져야 진짜 기술자-방적기계 설치·수리 원용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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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기계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고 정직합니다. 작업자가 땀 흘리고 노력하는 만큼만 움직이니까요.』
방적기계 설치와 보수에만 38년간 매달려 온 (주)대농 청주공장의 원용수대리(55)는 정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명장이다.
지난 55년 현대농 청주공장의 전신인 안양의 금성방직에 18세의 공원으로 입사한 그는 정년퇴직을 한 해 앞둔 올해까지 오로지 원면을 실로 뽑아내는 최종 공정인 정사분야 기계의 설치와 수리 일만 해왔다.
4백여 대라는 국내 최대의 와인더(끊어진 실을 이어가며 감는 기계) 설치기록을 갖고 있는 그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국졸학력이 전부인 그가 주로 일제나 독일제가 주류를 이루는 정사기계의 「박사급」이 된 것은 『지금까지 익혀온 기술, 앞으로 익힐 기술이 내가 가진 것, 가질 것의 전부』라는 생활신조의 결과다.
배운 것은 없지만 머리로는 창의적 사고, 몸으로는 정성을 다한다면 가장 앞선 기술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는 일해왔다.
기계를 설치하고 고장이 나면 뜯어고치고 같은 고장이 여러 곳에서 나면 구조 자체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닐까 조사하고 공정을 좀 더 합리적으로 개선할 방법은 없는가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는 실제로 큰 업적을 만들어냈다.
88년에 마하코너라는 독일제 자동 정사기를 들여왔을 때 기계마다 달려있는 모터를 중앙집중식으로 개조하자는 그의 아이디어를 회사가 채택, 45㎾용량의 모터 3대로 21대의 마하 코너에 달린 15㎾ 모터 모두를 대체할 수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해 완제품 실을 사람이 운반하지 않아도 되게 한 것도, 독일제 기계의 실패를 물어주는 장치의 고장이 잦자 볼 샤프트가 무리한 힘을 받게되는 설계 결함을 발견해 제작사에서 장치를 개조토록 한 것도 그의 창의와 연구의 결과다.
그가 가장 기쁠 때는 자신이 고친 기계나 새로 들여온 좋은 기계가 힘차게 돌아가는 것을 볼 때이고, 섭섭할 때는 수명이 다한 기계를 뜯어낼 때라고 한다.
자신의 손으로 설치하고 밤새워 고치면서 머리를 썩이고 다시 잘 돌아갈 때 기뻐하던 손때 묻은 기계는 늘 자식 같은 생각이 든다는 것.
그는 『우리는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선배들에게 스패너로 맞아가면서도 더 배워 저 양반보다 낫게 돼야 한다는 일념이 있어 불만이 없었다』면서 『기술은 정신이 우선인데 요즘 사람들은 조금 싫은 소리를 하면 언짢은 표정을 짓곤 해 마음에 안 든다』고 토로했다.
지난 연말부터 2공장의 와인더 배치를 모두 바꾸는 작업에 들어가 부하직원 17명을 이끌고 건설팀장을 맡고 있는 그는 『8월말까지는 끝내야한다』며 인터뷰가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떴다. <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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