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한국의 위상이 흔들린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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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수지의 악화를 가속화시켜온 우리나라의 수출경쟁력 약화는 마침내 세계수출 판도에서 우리나라의 지위를 흔들어 놓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우리나라의 벅찬 경쟁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수출이 작년에 우리나라의 수출규모를 앞지르기 시작,우리나라는 세계수출순위 12위에서 13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60년대부터 「수출입국」의 기치아래 순위의 사닥다리를 승승장구 오르기만 했던 우리나라 수출의 이같은 뒷걸음질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산업경쟁력의 약화라는 수출기반의 붕괴조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층 충격적이다.
83년에만 해도 1백30억달러라는 격차로 멀리서 뒤쫓아오던 중국의 수출이 불과 3년만에 우리를 추월한 것은 우리가 우려해온 후발개도국그룹의 추격속도가 우리의 행보보다 더 빨랐음을 말해주는 구체적 실증에 해당하는 것이다. 89년부터 현저한 기력상실증을 나타낸 우리의 수출이 빠른 시일내에 옛 활력을 되찾지 못할 경우 앞질러가는 중국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짐은 물론이고 고도성장 국가들에 의한 제2,제3의 추월을 당하게 된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수출촉진의 장단기 대책들을 다시 한번 차분하게 재점검하고 전열을 정비해야만 한다.
이럴 때일수록 단기수출실적을 올리기 위한 지원정책보다 제조업경쟁력강화를 핵으로 한 산업정책적 접근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노동력과 자금의 비용,중간재와 토지의 가격 등 모든 생산투입물의 가격을 안정시키는 한편으로 생산성의 전반전인 향상과 함께 고생산성 산업으로의 원활한 구조전환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대책을 추진중인 정부의 차질없는 정책수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산업활동의 주역인 근로자와 기업인들이 한국수출의 위기적 상황을 내손으로 극복해 보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실천에 나서는 일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수출촉진을 위한 각종 지원제도의 확충도 물론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는 이미 수출지원금융의 확대,수출보험기금의 확충,무역어음할인규모의 확대 등을 골자로 한 금년도 수출지원책 보강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중 수출업체의 가장 큰 관심사인 무역금융에 대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어 정부당국의 재검토가 요망된다.
무역금융지원대상을 전년도 수출실적 5천만달러 이하에서 1억달러 이하인 기업으로 상향조정함에 따라 수혜대상기업은 늘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수출실적의 한도설정으로 생기는 문제점은 그대로 남아있다.
무역금융지원을 받으려는 동기에서 1억달러 이상으로 수출을 늘리지 않으려는 경향을 막기 위해서는 1억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올린 기업에 대해서도 최소한 1억달러 한도내에서의 무역금융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기업의 근로자와 경영자,그리고 정부당국이 1달러라도 더 수출하겠다는 알뜰한 정성을 쌓아갈때만 쇠퇴일로에 있는 수출력의 소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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