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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실업 등 최대현안|후보들 시원한 정책제시 없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올해 미국대통령선거 진행에 있어 두드러진 점은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재선이 유력시되던 조지 부시 현대통령이 최근의 인기급락으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인물대 인물 또는 당대 당의 첨예한 대결이나 각축전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한쪽을 선택하는」 맥빠진 권리행사의 성격이 짙으리라는 것이다.
그만큼 후보로 나선 인물이나 공화, 민주 양당의 정강정책 또한 참신하거나 획기적이지 못해 유권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같은 공학당 내에서 부시의 경쟁후보로 떠오른 패트릭 부캐넌은 이른바 「미국제일 주의」을 주장하는 보수파로 미국이 세계도처에 군사적 영향력을 확산하고 있는데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내는 동시에 제3세계국가로부터의 이민자 유입의 감축을 주장하면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체결도 반대하는 등 강력한 고립주의 정책추진을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부캐넌의 공격에 부시진영은 부시가 이룩한 걸프전 승리, 공산주의의 잇따른 붕괴 및 신세계질서 확립 등의 업적을 무기로 느긋해 왔으며 그의 고립주의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까지 치부해왔으나 최근 부캐넌에 대한 지지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당황하고 있다.
부캐넌의 보수주의적 성향은 특히 세금인상 반대와 적극적 경제성장정책촉구 등의 주장과 결부돼 상당한 공감을 얻을 것으로 예상돼 이를 토대로 부캐넌이 다음달 18일 뉴햄프셔주의 첫 예비선거에서 부시에게 최소한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는 결과가 나온다 해도 부시진영에는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루이지애나주지사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데이비드 듀크의 후보출마는 언뜻 돈키호테적인 행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중산층 이하 백인들의 불만이 배태한 새로운 현상으로 작은 파란을 일으킬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역시 치열한 대치는 부시대 민주당후보진영과의 대결이다.
민주당 진영의 공통적인 공격메뉴는 역시 미국 국민들의 불만인 「부시경제실책」이다.
폴 송거스 전상원의원이 근검·절약 풍토의 확산과 미국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미국이 세계경제의 주도국으로 재 도약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나선 것과 보브 케리 상원의원이 국내경제회복을 통한 국제경쟁력 회복을 제안한 것이 그나마 구체적인 경제공약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부시의 강점으로 치부됐던 외교정책에도 문제가 있다는 민주당의 공격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진영은 일제히 부시가 외교정책면에서도 실패를 자초했다고 비난함으로써 그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전술을 쓰고 있다.
부시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각국 집권자들의 비위만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보브 케리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부캐넌과 민주당진영의 고립주의를 비난하는 부시진영에 대고 오히려 부시야말로 고립주의 외교를 펴왔다면서 그 결과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처에서 미국이 밀려나고 있다고 맹공을 펴고 있다.
민주당후보들의 전반적인 성향은 역시 진보적이지만 특히 빌 클린턴 의원이 진보의 선두로 최근 전미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로부터 지지를 받고 흑인 그룹에도 지지를 받으면서 앞서 나가고 있다.
한편 낙태문제의 합법화에 대한 양측의 대립도 큰 이슈 중 하나다.
보수적인 부시진영이 근친상간·강간·임신부의 생명위험 등의 경우를 제외한 낙태금지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후보진영은 일률적으로 낙태의 합법화에 찬성해 일부에서는 낙태문제가 대선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어떻든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는 실정으로 체면이 말이 아닌 현직대통령과 전국적인 지명도가 없는 고만고만한 야당후보 중 한사람과의 난형난제의 싸움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윤재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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