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勞使 양쪽에서 비판받는 '선진화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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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민간기구인 노사관계제도 선진화 연구위원회가 그저께 공개한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 최종 보고서에 노동계와 재계가 모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노동계는 입법을 강행할 경우 대정부 투쟁에 나서겠다고 하는데 재계는 노동편향적 방안이라고 하니 국민으로선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런 대립이 계속될 경우 노사정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입법화하기로 한 정부의 계획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노사관계를 국제기준에 맞추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궁극적으로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불안정한 노사관계 때문에 파업공화국으로 불리고 외국 기업과 투자자들로부터 기피당하는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노사는 대승적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도출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불리한 대목만 집중적으로 부각하면서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물론 보고서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통상임금에 상여금과 수당을 포함하자는 안은 무려 2백개가 넘는 수당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복잡한 임금체계 아래서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이를 도입하려면 근속연수에 따라 일률적으로 인상되는 호봉제에서 생산성과 연계되는 성과형으로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 실업자의 노조 가입도 직업적 노동운동가에 의해 과격 노동운동을 확산시킬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에 일리가 있다. 정리해고를 보다 쉽게 하고 파업을 어렵게 하는 방안이 추진될 경우 노동권이 약화될 것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한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노사 양측으로부터 비판받고 있는 이번 보고서는 어디까지나 논의를 위한 시안일 뿐이며 변경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렇다면 노사는 경제회생의 큰 걸림돌인 노사관계의 불안정성과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기 위한 폭넓은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 이제 공존할 것인지 공멸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며,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