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부유세 폐지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사회복지제도와 고율의 세금으로 유명한 스웨덴이 올해 부유세(wealth tax)를 폐지하기로 했다. 세금을 피해 부자들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것을 막고 기업 투자를 유도, 신규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다.

중도우파 연정을 이끌고 있는 프레드리크 레인펠트(42) 총리는 28일 스웨덴 일간 다건스 나이터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달 16일로 예정된) 춘계 예산안 심의 때 부유세 폐지를 제안해 올해 안에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레인펠트 총리 외에 연정에 참여한 자유당.보수당.기민당 당수도 기고문에 공동으로 이름을 올렸다.

부의 공평한 분배를 목적으로 하는 부유세는 지난해 9월 중도 우파 연정이 들어서기 전까지 1932년부터 단 9년을 제외하고 65년 동안 집권했던 좌파 사민당의 간판급 정책이다.

◆ "'보통 국가'를 향한 발걸음"=파이낸셜 타임스(FT)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부유세 폐지 제안은 평등주의 성향이 강한 스웨덴에서 부의 축적이 더 이상 금기가 아니라는 강한 메시지를 보낸다"고 평가했다. 우파 성향의 싱크탱크인 팀브로의 마리아 랜가 소장은 "스웨덴이 '보통 국가(normal country)'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데르스 보르 재무장관은 "이번 조치는 기업가들의 투자 의욕을 촉진하는 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유세를 없앤다 해도 정부 재정이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자들의 재산 국외 유출이 줄어 도리어 세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소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세금을 줄여 투자 활성화에 성공한 영국 사례를 연구하기로 했다.

◆ "부유세 때문에 자본 대거 유출"=전문가들은 그간 부유세를 피해 외국으로 유출되는 스웨덴 자본이 연간 약 1조5000억 크로네(약 20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 세계적 가구업체인 이케아(IKEA)의 창업자인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외국에 재단을 설립해 230억 달러 상당의 재산에 대한 부유세를 내지 않고 있다. 일부 기업인은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부유세를 내라고 하면 회사를 외국으로 옮기겠다고 위협, 예외를 인정받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부유세 폐지로 특히 벤처기업의 자금 조달이 쉬워지고 기업 창업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 보고 있다. 부유세 때문에 자산이 유출되면서 개인들이 창업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통계로 유럽연합(EU) 25개 회원국 가운데 스웨덴은 개인 사업가의 비율이 18번째에 머물렀다.

스웨덴에서는 미혼자는 150만 크로네(약 2억원), 결혼했거나 동거 중인 남녀는 300만 크로네를 넘는 순재산(전체 재산에서 부채를 뺀 것)을 보유한 경우에 부유세를 내야 한다. 세율은 본래 1.5%였으나 올해 0.75%로 다소 내렸다. 재산에는 은행 예금.주식.자동차.선박.부동산 등이 모두 포함된다.

백일현 기자

◆ 부유세=부의 편중을 바로잡으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세금이다. 유럽 국가 가운데 스웨덴 외에 프랑스.스페인.그리스.룩셈부르크가 이를 운용하고 있다. 한때 이를 채택했던 오스트리아.덴마크.네덜란드는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자본 유출만 부른다는 이유로 2003년 이후 폐지했다. 독일은 재산이 아니라 일정 액수 이상의 소득에 최고 세율을 매기는 방식의 부유세를 올해 10년 만에 부활시켰다. 같은 유럽 국가라도 영국과 벨기에는 이 제도를 한번도 채택한 적이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