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소감 유동현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겨울이다.
강풍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포근하기만한 계절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길모퉁이의 군고구마 장사 앞에서 호호거리는 연인들의 사랑이 구수하게 영그는 계절이다. 포근하고, 행복하고, 정말 따뜻한 계절이다.
GNP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덩달아 물가가 치솟아도 외제가 없어서 아우성치는 선진국이 되었으며 유엔에도 가입했고, 비핵화에도 협의했다. 정말 개국이래 최대의 태평성대다.
무엇이 더 부러우랴.
그런데 자꾸만 가슴 한 구석이 시리다. 가슴으로 땅을 기며 생명을 영위하는 거리의 천사들. 껌팔이 아이들. 연탄 한 장 달랑 사들고 언덕을 기어올라야 하는 달동네. 재개발 구호에 거리로 내쫓긴 철거민. 근로자가 사라진 공장. 유흥가의 소녀들. 여의도광장을 질주했던 광인. 폐광으로 폐촌이 되어가는 광산촌·어촌·농촌, 그리고 화절령.
아직도 존재하며 우리의 가슴을 찌르고 있는 이 공존의 그늘!
이국의 생활에 정신없이 휘말리다 한편으론 서운하면서도 반갑게 접한 고국의 소식인 희곡 입선!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단지 하나, 공존의 그늘이 기억 속으로 굳세게 자리잡았다는 것뿐.
◇약력:▲1958년 전북 정읍출생 ▲1990년 전교학 문예희곡 『꺾이는 갈대는 날을 세운다』가 당선 ▲1991년 서울예전 극작과 졸업 ▲현재 일본거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