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며 살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재작년 이맘때.
아들아이가 S대 시험에서 낙방했다.
혼자 발표를 보고 돌아와 어두운 빈방에 팔다리를 쭉 뻗고 머리를 방바닥에 묻은 채 훌쩍훌쩍 울던 때가 엊그제 같다. 1년이 지난 후, 마치 권투시합에서 역전승을 거두듯이 승리의 기쁨으로 인하여 온종일 우리집은 전화통에 불이 났다.
참으로 우리 삶 속에는 기쁨과 슬픔이 마치 새끼줄 엮어지듯 교차되는 것 같다. 합격의 소식을 듣는 순간 모든 부모들이 그랬듯이 정말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지금 그토록 감격스러웠던 느낌이 점차 엷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생에는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기뻐도 모두 잠시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의 존재 자체가, 보이는 그 어떤 것으로는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음을 또 한번 체험하게됐다.
이제 새해가 돌아왔다. 마지막 달력 한 장이 아쉽게 벽에 불어 있다가 내려오고 새달력이 다시 걸렸다.
일생을 통해 볼 때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시간의 마디를 거쳐가며 이 마디들이 다 지나가 버리면 제각기 인생의 결산을 계산할 때가 온다.
단 한 자루 밖에 없는 초가 타기 전 우리는 우리의 남은 일들을 해야만 한다.
새해엔 더 많이 나누며 살고싶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으니까 그동안 난 너무 기쁨도 슬픔도 나누지를 못하고 살아왔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주저하지 말고 자신을 맡기고싶다. 지금쯤 맑고 차디찬 파란 겨울 하늘밑. 그 하늘밑 어디에 낙엽에 늘린 숨겨진 잎사귀가 스러지지 않고 숨을 쉬고 있듯이, 나에게도 이제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해야할 일이 열릴 것 같다.
동이 트기 전 어둠 속에서 묵상하며 헤아려 본 독백이 제대로 실천되어지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일요일에 나를 기다려줄 작은 꼬마들의 눈망울을 뒤로하면서…. 김선희<서울 강남구 신사동 624의24>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