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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 울리는 해외진출 중국 스타들|대표급 3백여명 타도 앞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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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국스포츠계가 새해 들어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왕년 스타플레이어들의 해외유출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있다. 80년대 중국을 빠져나간 3백여 선수 및 지도자들이 유니폼을 바꿔 입고 탁구·체조·배드민턴 등 중국이 강세를 보여온 각 종목에서 만리장성 벽을 허무는 선봉이 되어 달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근착 『아주주간』은 이 같은 현상을 가리켜 「중국인 타 중국인(중국사람이 중국사람을 부순다)」라고 아예 노골적인 불만과 함께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초에는 리푸룽(이부영) 중국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 영국에서 활약중인 탁구선수 천신화(진신화)의 올림픽출전에 이의를 제기, 세계 탁구계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선수들이 얼마나 외국에서 활동하며 또 중국을 빠져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선수들의 해외진출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종목은 지난 60년대부터 세계무대를 평정해온 탁구.

<일본에만 백여명>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만 88년 서울올림픽 남자복식 금메달리스트인 웨이칭광(위정광) 등 무려 1백여명의 성·시 또는 국가대표급 중국탁구선수들이 활약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제38, 39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단식을 2연패했던 전진속공의 대명사 장자량(강가량)이 대표팀감독을 맡는 외에도 간간이 선수로 출전, 눈길을 모으고 있으며 최근엔 세계랭킹 9위인 천즈빈(진지빈)이 탁구강국 독일에 진출, 중국탁구기술의 완전노출 현상을 빚고 있다.
북한의 이근상 다음가는 셰이크핸드 수비수로 전 월드컵챔피언까지 지낸 천신화는 각종 국제무대에서 번번이 중국팀을 괴롭히는 영국대표로 맹활약,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소면호」란 질시 어린 별명까지 얻어가졌으며, 프랑스 여자팀의 에이스 왕샤오밍(왕효명·세계17위)은 약체 프랑스를 지바세계선수권대회 3위까지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왕샤오밍은 프랑스에서 73년 사라예보대회 여자단식챔피언인 후위란(호옥난)의 특별개인지도를 받고있다.
개별인적자원이 풍부한 미국에선 77, 79년 세계선수권 복식2연패를 달성했던 장더잉(장덕영)이 로스앤젤레스에 탁구교실을 개설, 후진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국탁구계의 자존심에 좀처럼 지우기 힘든 상처를 안긴 것은 캐나다로 이민간 전 세계챔피언 겅리쥐안(경려연).

<예선탈락 수모도>
캐나다인 탁구선수와 결혼, 지난해 지바세계선수권에 모습을 드러낸 겅리쥐안은 여자단식16강전에서 전성기 때 못지 않은 특유의 빠른 속공으로 세계7위인 가오쥔(고군)을 3-1로 격파, 중국코칭스태프의 낯을 뜨겁게 만들었다.
지바대회에선 또 북경출신의 왕옌석(왕연생)이 노르웨이대표로 출전, 중국최강의 남자복식조인 마원거(마문혁·세계4위)-천즈빈 조를 2-1로 제압, 「예선탈락」의 수모를 안겼다.
중국탁구의 해외진출은 급기야 국교관계가 없는 대만에까지 밀려들어 대륙출신의 쉬징(서경)이 대만여자대표로 활약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중국-대만 탁구계의 핫이슈는 88년 서울올림픽 여자 단식금메달리스트인 천징(진정)의 거취여부.
올해 22세의 천징은 대만 굉기컴퓨터회사탁구팀의 주임 천징쿠이(진경괴)의 아들인 천더런(진덕인)과 3년 전 독일에서 만난 이래 사랑에 빠져 결혼설이 끈질기게 대두되고있다.
배드민턴 강국으로 꼽히는 말레이시아 또한 중국배드민턴 스타플레이어들의 유입으로 전력이 배가됐다.
88년 팡카이샹(방개상)이 말레이시아대표팀을 지도, 호성적을 거둔 이래 전 세계챔피언 한젠(한건)이 그 뒤를 따랐고 올해엔 87, 89년 세계선수권남자단식 2연패를 달성한 양양이 역시 배드민턴선수로 85, 87년 세계선수권여자단식 동메달리스트인 아내 정위리(정욱리)와 함께 말레이시아에 진출,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다.
체조에서의 해외진출은 미국에 집중되고있다.
이것은 81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여자팀에 첫 단체 금메달의 영광을 안겨준 주욕 원자(문가)가 87년 도미, 중국대표팀코치 량하오첸(양호천)과 세계선수권금메달리스트인 마옌훙(마연홍)을 잇따라 불러들여 캘리포니아주에 체조클럽을 열고 화교출신의 체조선수를 양성하고있기 때문.
안마종목의 제1인자로 통하던 리샤오핑(이소평)도 미국서 활동중이며 살인적인 강스파이크로 80년대 세계여자배구계를 주름잡았던 랑핑(낭평) 또한 미국에서 활약중인 중국스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쾌적한 환경의 호주에선 탁구대표감독 출신의 저우란쑤(주난소), 남자농구주전멤버 장다웨이(장대위), 여자농구의 간판스타였던 숭샤오보(송요파), 체조국가대표감독 첸쥐핑(전국평)이 활동 중.

<각국 대표팀 지도>
이처럼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중국의 스타들이 고국을 등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중국사회가 개방되면서 물질적인 유혹, 즉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것이 첫째 원인으로 꼽힌다.
말레이시아에서 활약중인 배드민턴의 양양과 한젠은 월수입 1천2백달러로 중국에 있을 때 50달러의 무려 24배나 되는 월급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숙식과 승용차를 무료로 제공받아 중국에 남아있는 왕년의 스타들을 자극하고 있다.
양양은 최근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골프에 심취, 골퍼로의 변신까지 꿈꾸고있다.
이 같은 금전적 유혹 외에도 중국 내의 「비인기」가 해당종목 스타들의 해외진출욕구를 부추기고 있다.
배드민턴 스타들이 말레이시아로 몰리는 것도 중국 내에선 축구 등 인기종목에 밀려 알아주는 사람이 없지만 말레이시아에신 마치 국빈대접을 받는 까닭.
이에 따라 중국에선 일선에서 뛰고있는 스타들의 외국진출을 규제하고 있지만 빠져나가려는 선수들의 숫자는 해마다 증가하고있는 실정.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중국의 땀과 돈을 토양으로 키워진 각 종목 스타들이 너무나 많이 외국으로 빠져나가 역으로 세계무대에서 중국스포츠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부머랭효과를 낳고 있어 중국스포츠가 인재양성 못지 않게 해결해야할 최대 숙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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