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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소비 속 기억에 남는 볼펜 한 자루 선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요즘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각종 호화선물들이 범람하는데 나의 경우 조그마하지만 마음속에 와 닿는 선물을 받은 기억이 있다.
나는 국민학교 교사로 경력이 4년밖에 되지 않지만 늘 신선하고 즐거운 교직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처음 발령이 났을 때 시골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1학년 담임을 맡았다. 코흘리개 아이들이 세수도 안 한 얼굴로 와서도 선생님이 좋다고 얼굴을 비비기도하고 손을 꼭 잡기도 하는 순진한 어린이들과 생활하다 두 달이 지나 5월15일 스승의 날이 되었다.
1학년 이어서인지 스승의 날이 뭔지 조차 모르는 듯 여느 때와 똑같았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기영이란 아이가 선물을 가져왔다고 한다.
너무나 수줍음을 타 내놓지 못하고 하루종일 망설였던 모양이다. 결국은 내놓았는데 그것은 한 통의 편지와 볼펜이었다.
편지에는 『저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등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비록 맞춤법은 틀렸지만 대견하고 장해서 기영이를 꼭 껴안아주었다.
처음 입학했을 때는 책도 못 읽던 아이들이 두 달이 지났다고 책도 술술 읽고 편지까지 썼으니 그것보다 더 기쁜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편지를 다 읽고 기영이를 꼭 안아 주었을 때 기영이의 커다란 눈이 더욱 커 보였던 기억이 연말의 호화선물이야기를 들으니 새삼스러워진다. 【정미영<서울 동작구 흑석 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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