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위 → 1위 '기적의 25m'… 세계가 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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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자유형 400m에서 우승한 박태환(中)이 시상식 뒤 은메달리스트 우사마 멀룰리(左), 동메달리스트 그랜트 해켓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멜버른 AFP=연합뉴스]

350m를 턴했을 때 박태환의 이름은 3위 안에 없었다. 내내 5위로 달리다가 300m를 지나 피터 반더카이(미국)를 제치고 4위로 올라섰을 뿐이었다.

그러나 턴을 한 직후 박태환이 쭉쭉 뻗어 나왔다. 금세 그랜트 해켓(호주)을 따라잡았다.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15m 지점(365m)에서 유리 프릴루코프(러시아)를 따돌리고 2위로 치고 올라왔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였다. 한국 응원단에서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함성이 터져나왔다. "더 빨리." "조금만 더."

중간 지점인 25m쯤에서 마침내 선두였던 우사마 멀룰리(튀니지)마저 제치고 1위로 나섰다. 그 다음부터는 거칠 것이 없었다. 3분44초30. 멀룰리(3분45초12)를 0.82초 차로 따돌린 당당한 우승이었다. 이 기록은 지난해 범태평양대회에서 자신이 세운 아시아 기록(3분45초72)을 1초42나 앞당긴 아시아신기록이기도 했다.

25일 호주 멜버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벌어진 2007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경영 첫 금메달은 박태환의 것이었다. 남자 자유형 400m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오전에 벌어진 예선에서 지난해 최고기록(3분44초27) 보유자인 클레트 켈러(미국)가 예선 10위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심홍택 대한수영연맹 회장은 "켈러가 탈락했을 때 박태환의 우승을 예감했다. 선수들이 지난해 켈러 다음 가는 기록을 세운 박태환을 의식해 오버 페이스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펜딩 챔피언 해켓은 예선 8위로 가까스로 결선에 올랐다. 결승 진출자 모두가 우승 꿈에 부풀 만한 상황이었다.

예선 2위(3분46초24)로 5레인을 배정받은 박태환은 마지막 50m 랩 타임이 참가자 중 두 번째로 좋았다. 하지만 박태환 본인은 "레이스 후반에 지쳤다"며 만족하지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결선에서는 해켓이 중반까지 줄곧 1, 2위를 다투며 치고 나갔고 호주 관중의 환호가 경기장을 울렸다. 멀룰리.반더카이.프릴루코프가 따라붙어 선두권을 형성했고, 박태환은 5위를 유지했다.

300m 지점을 넘기며 해켓을 시작으로 전력을 다한 선두권의 페이스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지막 50m를 노리고 있던 박태환의 작전은 훌륭히 들어맞았다. 지난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장린(중국)을 제치고 우승할 때의 재현이었다.

멜버른=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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