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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86. 우먼 파워 <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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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또 한 명의 여성은 이인호 여사다. 그 분은 미국 웨슬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서양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핀란드 대사로 임명돼 우리나라 외교 사상 최초의 여성 재외 공관장이 됐다. 98년에는 러시아 대사로 부임했다. 내가 이 여사를 처음 만난 것은 82년 당시 부시 미국 부통령 부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미 대사관 측이 한국의 여류 명사 10명을 초청해 부시 부통령의 부인 바바라 여사와 오찬을 함께하는 모임이었다. 회동이 끝나고 초대받은 손님들만 남아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이 여사는 "우리가 미 대사관 측이 초청한 자리에서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말이 안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모임을 자주 갖자고 했다. 나는 그때 이 여사 발언에 크게 동감했다. 각 분야에서 지도자로 알려진 인사들이 서로 인사조차 없이 지낸 것은 반성할 일이다.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도 남성처럼 다방면으로 인맥을 쌓고 넓혀, 서로 힘을 모아야 여성의 지위가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여사는 그 뒤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고인이 되신 이태영 여사의 업적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며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우고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인습에 맞서 싸운 여성운동가이기도 하다. 그 분은 69년 55세 때 서울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여성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교육계의 자랑스러운 여성으로는 김옥길 총장을 꼽고 싶다. 이화여대 총장을 세 번 연임했고 79년 말 문교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학원.교복 자율화를 추진했다. 그 분은 활달한 성품과 넓은 도량으로 교육계.종교계에서 폭넓은 사회활동을 했다. 김 총장은 우리나라 여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은퇴 후 충청도 수안보 '고사리 수련원'에 계실 때 자주 뵈러 갔었다. 내 육순 잔치를 직접 열어주기도 한 그 분에 대한 그리움이 날이 갈수록 커진다.

이 시대의 작가 박경리 여사를 알게 된 것 또한 행운이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박 여사를 만나면 그 분의 내면에서 불타고 있는 정열과 사회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대하소설 '토지'를 26년에 걸쳐 마무리지은 여사의 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박 여사는 토지문학관을 세워 젊은 작가들의 활동을 뒷바라지하면서 여생을 뜻있게 보내고 있다. 나 스스로 후배들을 위해 한 일이 별로 없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한국 여성은 오랜 세월 설움을 견디며 살아왔다. 이렇게 쌓은 강인한 정신력이 광복 후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은 원동력이 된 게 아닌가 한다. 나 역시 결혼과 이혼으로 얻은 인생의 깊고 쓰라린 상처가 없었더라면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을 것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여성의 삶을 지켜보면서 여성의 엄청난 잠재력을 믿게 됐다. 앞으로 각 분야에서 생각지도 못한 큰 일들을 여성이 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노라·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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