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되신 이태영 여사의 업적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며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우고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인습에 맞서 싸운 여성운동가이기도 하다. 그 분은 69년 55세 때 서울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여성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교육계의 자랑스러운 여성으로는 김옥길 총장을 꼽고 싶다. 이화여대 총장을 세 번 연임했고 79년 말 문교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학원.교복 자율화를 추진했다. 그 분은 활달한 성품과 넓은 도량으로 교육계.종교계에서 폭넓은 사회활동을 했다. 김 총장은 우리나라 여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은퇴 후 충청도 수안보 '고사리 수련원'에 계실 때 자주 뵈러 갔었다. 내 육순 잔치를 직접 열어주기도 한 그 분에 대한 그리움이 날이 갈수록 커진다.
이 시대의 작가 박경리 여사를 알게 된 것 또한 행운이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박 여사를 만나면 그 분의 내면에서 불타고 있는 정열과 사회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대하소설 '토지'를 26년에 걸쳐 마무리지은 여사의 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박 여사는 토지문학관을 세워 젊은 작가들의 활동을 뒷바라지하면서 여생을 뜻있게 보내고 있다. 나 스스로 후배들을 위해 한 일이 별로 없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한국 여성은 오랜 세월 설움을 견디며 살아왔다. 이렇게 쌓은 강인한 정신력이 광복 후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은 원동력이 된 게 아닌가 한다. 나 역시 결혼과 이혼으로 얻은 인생의 깊고 쓰라린 상처가 없었더라면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을 것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여성의 삶을 지켜보면서 여성의 엄청난 잠재력을 믿게 됐다. 앞으로 각 분야에서 생각지도 못한 큰 일들을 여성이 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노라·노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