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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먹고사는 은막의 조율사|예술성-흥행 틈서 항상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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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집체예술인 영화는「영화감독의 예술」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연기자나 기술진은 감독의 머리속 작품세계를 스크린에 나타내는 도구로 기능한다.
때문에 세계영화사는 영화감독사에 다름 아니다.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독일의 표현주의, 프랑스의 누벨바그, 미국의 뉴시네마운동등 영화사의 전환기는 영화감독들에 의해 열려왔다.
야전사령관이 다 그렇듯 영화감독의 덕목도 지성과 용기, 그리고 행동이다.
프로야구에 비유컨대 영화감독은 감독+포수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는 영화의 기획부터 완성까지 작전과 용병의 책임을 져야하고 투수(배우)를 리드하며 그라운드의 살림까지 맡아야한다.
프로야구는 야구기술 한가지로 집약되지만 영화는 그렇지않다.
영화감독은 시나리오의 해석, 연기지도뿐 아니라 촬영·조명·편집·음악·미술·의상·분장·녹음·현상·효과, 그리고 소품에 이르기까지 두루 알아야 한다.
물론 분야별로 전문인의도움을 받지만 영화에 쓰인 모든 요소에 대한 결과는 전적으로 감독이 책임진다.
따라서 아무나 영화감독이 될수 없음은 말할 나위도 없고 감독으로 성공하려면 문학을 비롯한 예술·종교·정치·사회에 상당한 조예가 요구된다.
정상적인 감독이라면 누구나 아티잰(장인), 나아가 아티스트(작가)의 꿈을 꾼다.
아티잰은 영화기술의 달인쯤을, 아티스트는 자신의 확고한 인생관·세계관, 그리고 영화기법을 보여주는 작가를 뜻한다.
지난해『장군의 아들』이 한국영화사상 최다관객을 동원했을때 정작 당사자인 임권택감독은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50대후반, 아티스트로 매진해도 늦은 나이에 오락영화를 연출한 것이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90∼91년 아티스트로서『개벽』연출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흥행은 실패로 나타났다. 춘우영화사는『매춘』이란 상업영화로 모은 돈을『개벽』에 쏟아넣었다가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울 지경까지 몰렸다.
그때 임감독은 약간 흥분했다. 자신의 능력 부족을 안타까워하고 관객을 야속해했다.
어느 젊은 감독은『한국의 영화감독은 대개 반할리우드 성향인데 관객은 철저히 할리우드적인게 가장 큰 딜레마』라고 말한다. 감독은 예술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나 관객은 오락영화만을 찾는다는 뜻이다.
엉터리 영화를 찍어대는 재능없는 많은 감독을 제외하고는 여기에 감독들의 비애가 있다.
영화연출방식은 크게 포토제닉형·콘티뉴이티형으로 나뉜다. 포토제닉은 주로 적은돈을 들여 영화의 예술성에 주안을 두는 유럽식이고, 콘티뉴이티는 많은 돈을 들여 스토리델링에 완벽을 기하는 할리우드식이다.
영세한 제작자본으로 그나마 예술성을 찾으려면 포토제닉방식으로 가야하는데 관객은 할리우드영화에 젖어있으니 콘티뉴이티방식을 따라가다 그 결과는 이도저도 아닌 얼치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국 영화가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뽑히는 것은 상당부분 여기에 기인한다.
충무로를 「배회」하는 감독들은 늘 외롭고 고단하다.
나름대로 그들의 머리는 영화구상으로 차있고 안주머니에는 쓰다만 시나리오가 소중히 간직돼 있다.
그러나 그들의 구상을 영상에 재현해줄 제작자를 만나기란 좀체 쉽지 않다.
물론 인기있는 감독들은 제작자와 대등하게 말할 수도 있고, 제작자가 먼저 고개숙여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감독들은 영화인으로서의 좌절감과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다.
현재 감독협회에 등록된 감독은 1백60명. 이중 을해 1편이라도 메가폰을 잡아본 사람은 8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실업자인 것이다.
잘 팔리는 감독이라도 경제문제에서는 속빈 강정인수가 허다하다.
지난해 『우묵배미의 사랑』을 촬영한 영동로케장에 주연 여배우는 그랜저를 타고왔고 주연 남배우는 쏘나타를, 고참 촬영기사는 콩코드를 몰고 왔을 때 감독은 프라이드로 나타났고 그외는 전세버스나 지하철로 왔었다.
감독들은 거의 자기 짐이없다.
감독 연출료는 편의상 ABC급으로 나뉜다.
임권택·김호선·이강호·이두용·배창호등이 4천만∼5천만원 선의 A급이고, 박철수·정지영·장선우·강우석·곽지균·박광수·김유진·신승수·이명세등이 2천만∼3천만원쯤 받는 B급이다. 몇년새 주가가 뛴 장길수는 A·B의 중간쯤 요구한다. 그리고 C급이하는 1천몇백만원에서 몇백만원선까지 천차만별이다.
중견감독 정지영의 생활을 들여다보자. 그는 요즘 베트남로케가 예정된 『하얀 전쟁』을 2천5백만원의 연출료를 이례적으로 현찰로 받고 촬영중이다.
그는 비슷한 개런티를 받고 89년에는 『남부군』에 매달렸고 지난해 후반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를 연출했으니 내년 상반기가 다가야 완성될 『하얀 전쟁』까지 합치면 30개월에 모두 7천5백만원쯤 번 셈이다. 월수로 치면 2백50만원.
이 돈중 세금, 각본 완성을 위한 여관비, 4∼5명쯤되는 조감독들 술사주기, 감독으로서 여기저기 부딪칠 때 드는 품위유지비등을 빼고나면 월수입 1백만원을 간신히 넘기게 된다.
이 돈으로 40대중반의 그는 두자녀 교육비등 생계를 꾸린다. 그가 무주택자임은 물론이다.
감독들에겐 가정생활도 경제문제 못지않게 심각하다.
한편의 영화는 제작자와 돈과 감독의 구상이 손잡을때 탄생이 시작된다.
제작자가 나서면 감독은 각본을 쓰기 위해 보통 한달반∼두달까지 여관에 틀어박힌다. 시나리오는 보통 1,2, 3고까지 보는데 이 기간중·감독은 거의 집에 안들어간다. 총각인 장선우는 아예 충남의 단골 절로 들어가버린다.
각본이 완성된후 석달에서 아주 길면 1년 가까이 걸리는 촬영기간중에는 지방로케다, 러시필름 편집이다 해서 더욱 집에 갈 기회가 적어진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편집·녹음등 후반작업을 하느라 외박하기 일쑤다.
그들은 말하자면「역마살」이 끼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아내에게 미안해한다.
총각인 경우는「역마살」이 즐거운 모양이다. 지난달 삼척에서 있은 강우석의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로케장에 배창호와 이명세가 격려차 나타났다. 『천국의 계단』을 막 끝냈지만 배창호는 며칠새 「좀이 쑤셔」삼척에 나타나 강감독과 하룻밤을 보낸 뒤 그 다음날 새벽 안동으로 훌쩍 떠났다.
영화는「감독예술」이지만 그 작업은 협동의 예술이기도 하다.
감독과 배우, 감독과 제작자, 감독과 촬영기사는「부부사이」라고 한다(촬영과 조명 또한 내외간이다).
때문에 감독은 자신의 내면 작품세계를 효과적으로 표출키 위해 이심전심이 가능한 배우·스태프와 콤비플레이를 하려 한다.
외국에서는 마틴 스코세스와 로버트 드니로팀이 유명한데 국내에서는 배창후 안성기팀이 대표적이다. 배감독은 전작품에 안성기를 기용했다.
그리고 80년대초 이장호-이보희, 문여송-최선아팀이 두드러졌고 임권택은 이혜영과 즐겨 손잡았으며 박철수는 근작3편을 모두 황신혜에게 주연을 맡겼다.
촬영쪽으로 보면 임권택·정일성라인(조명 차정남)이 『개벽』『아제아제 바라아제』『장군의 아들』등을 만들었고 배창호는 정광석과『깊고 푸른 밤』등 6편을 같이 작업했다.
제작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필름 많이 쓰는 감독으로는 김호선·박광수·장선우등이 있고 적당히 필름쓰며 맵시있게 뽑아내는 감독은 고영남·강우석등이 손꼽힌다. <이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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