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실전논술] 지구촌이 '하나의 마을' 되는 건 시대 조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1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두 나라 협상단이 시장 개방의 수위 등 현안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중앙포토]

뉴욕 타임스의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화 주창자로 꼽힌다. 그는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세계는 평평하다' 등 단 두 권의 책으로 명성을 얻었다. 지식인 사회를 휩쓴 세계화 반대론 또는 경계론 속에서 세계화가 대세라고 증언한 것이다.

세계화는 결코 일시적인 현상도, 흘러가는 유행도 아니다. 냉전체제를 대체한 시스템이며, 지구 전체를 하나의 마을로 바꿔가고 있는 막강한 시대적 조류라는 게 프리드먼의 주장이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그의 목소리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9.11 사태를 세계화와 종족보호주의의 충돌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가 바로 그런 현상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렉서스는 일본의 도요타가 세계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고급 자동차로 기술과 시장을 중시하는 세계화를 상징한다. 중동 지역이 주산지인 올리브 나무는 세계화를 거부하는 종족보호주의를 의미한다. 중동 문제 전문기자였던 저자는 중동 지역 특유의 종족보호주의가 세계화를 지향하는 흐름과 대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화란 여러 지역의 링에서 체급별로 이뤄지던 복싱 경기가 한곳에서 무제한급의 이종격투기로 변했음을 의미한다. 세계적인 경쟁체제에 참여하는 개인이나 기업, 그리고 국가는 당연히 더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 경쟁에서 패하거나 문화적 특수성을 보존하려는 쪽은 이런 흐름에 거세게 저항하게 된다.

프리드먼이 역설한 세계화와 종족보호주의의 충돌은 현재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적용된다. FTA와 쌀이야말로 세계화와 종족보호주의 충돌의 전형적인 예다. FTA는 렉서스, 쌀은 올리브 나무의 대체물이다.

한.미 FTA는 두 나라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완전 개방을 목표로 진행하지만 반발도 거세다. 특히 쌀시장 개방은 우리 국민이 가장 세게 저항하는 의제다. 쌀은 단순한 상품과 서비스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계화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프리드먼은 세계화가 모든 수준에서 경제와 사회체제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본다.

세계화의 피해가 구체적이고 단기적이어서 피해 계층이 목소리를 높이기 십상이지만 세계화의 혜택은 추상적이되 장기적이어서 수혜 계층이 폭넓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인은 세계화로 자신들의 저임금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아우성이다. 그 대신 미국 경제는 훨씬 더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에 집중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분야의 일자리가 늘고 수입도 훨씬 커진다.

국제가격보다 다섯 배 가까이 비싼 우리 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저가의 외국산 쌀이 들어오면 우리 쌀은 고품질 브랜드화에 주력하게 된다. 쌀시장 말고도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에 더욱 주력해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현대 경제학의 기본 원리가 된 리카도(1806~73)의 비교우위론에서 확인된 것처럼 상대적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효율성을 더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세계화가 급진전될수록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프리드먼의 주장이 득세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김방희(생활경제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